가전업체 밀레코리아는 최근 독일 본사에서 보내는 진공청소기 물량을 비행기로 받기로 했다. 배에 실으면 밀려드는 주문량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비행기 물류비용을 생각하면 손실이 크지만 소비자를 마냥 기다리게 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누구나 집에 하나쯤은 갖고 있을 청소기가 왜 이렇게 인기상품이 됐을까. 가전업체들은 봄철 황사와 방사성 물질 공포 때문에 특수(特需)가 생겼다고 풀이한다. 특히 1940년대 미국에서 방사성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개발된 ‘헤파 필터(HEPA·High Efficiency Particulate Arrestor)’가 부착된 가전들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미세한 먼지를 막아준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에 지진이 난 11일 이후 헤파필터 관련 회사들의 주식은 강세를 보이며 대표적인 ‘지진 수혜주’로 꼽히기도 했다. ○ 헤파필터 가전 뭐가 있나
헤파필터를 쓰는 대표적인 가전은 진공청소기다. 헤파필터를 처음으로 진공청소기에 적용한 밀레의 ‘S5 진공청소기’는 2200W의 강력한 모터와 미세먼지가 그대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한 필터시스템을 갖췄다. 헤파필터와 9겹 보호막으로 구성돼 못이나 유리조각 같은 물체가 들어와도 찢어지지 않는다. 윤일숙 밀레코리아 마케팅 팀장은 “1∼3월 초 진공청소기 판매대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늘었다”고 말했다.
위니아 에어워셔 로봇청소기에도 헤파필터를 장착한 제품이 있다. 올해 삼성전자가 내놓은 스텔스 로봇청소기는 청소할 영역을 보고, 찾고, 먼지를 쓸고, 담고, 잡고, 흡입하고, 헤파필터로 거르는 7단계 청소 기능을 수행한 뒤 탈·부착이 가능한 초극세사 걸레를 이용해 바닥에 남아 있는 미세먼지를 닦아 준다. 로봇청소기에 장착된 카메라가 집 안의 영상을 초당 30회 간격으로 촬영해 스스로 청소영역을 인지한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LG전자도 헤파필터를 장착한 침구 전용 청소기를 선보였다. LG전자는 “청소기 본체 내부의 앞과 뒷면에 헤파필터를 2중 장착해 미세먼지 방출량을 획기적으로 낮췄다”고 밝혔다.
에어워셔도 대표적인 헤파필터 가전이다. 위니아만도는 올해 1∼3월 초 ‘위니아 에어워셔’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0% 늘었다고 밝혔다. 이 회사의 2011년형 ‘위니아 에어워셔’는 건조하고 오염된 실내공기를 빨아들여 세균과 미세 먼지, 포름알데히드 등의 유해물질을 정화해주는 게 특징. 또 깨끗한 공기를 확산시켜 최적의 습도(40∼60%)를 유지해준다. 황사가 심한 날에는 ‘퀵 에어워셔’ 모드를 사용해 세척된 공기를 헤파필터로 다시 한 번 정화해 준다. ○ 실제 효과는?…맹신은 안돼
LG전자 침구전용 청소기 헤파필터는 연구소의 무균실 등에도 많이 쓰이는데 0.3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 분의 1m) 입자를 한 번 통과시킬 때 99.97% 이상 제거한다고 알려져 있다. 크기가 0.4∼0.5μm인 집먼지와 진드기는 잡아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0.3μm보다 작은 물질은 거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황사와 방사성 먼지 제거에 얼마나 효과적일까.
전문가들은 헤파필터를 맹신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방사성 물질로 된 먼지를 걸러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방사능에 무조건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방사능을 완전히 막아주는 피복제품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 또 필터에 걸려졌더라도 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방사성 물질에서 나오는 방사선에 노출될 수도 있다. 방사성 물질은 다양하고 크기도 작아 제대로 걸러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헤파필터는 집먼지, 진드기 등 크기가 비교적 큰 것은 확실히 다른 필터에 비해 효과가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그러나 황사의 일부 물질은 0.3μm보다 작고, 방사성 물질 역시 작고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많으므로 소비자들은 꼼꼼히 따져보고 구입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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