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상하이에서 열린 쎄라토 신차발표회에서 쎄라토 모델인 중국 가수 황정이 홍보대사로 뽑힌 일반인 여성모델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이번 쎄라토 출시에 실패하면 우리 모두 양쯔 강에서 만납시다.”
중국형 쎄라토 출시를 하루 앞둔 2005년 8월 17일 중국 상하이의 한 식당. 조용히 밥을 먹던 이형근 둥펑웨다(東風悅達)기아(DYK) 법인장(현재 기아차 부회장)이 꺼낸 한마디였다. 양쯔 강은 DYK의 판매법인이 있는 상하이와 현지 공장이 있는 옌청(鹽城)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카니발과 옵티마의 실패에 이어 쎄라토마저 실패하면 기아차의 중국 사업은 완전히 접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 법인장이 ‘비장한 각오로 쎄라토를 반드시 성공시키자’는 취지로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이런 각오가 통한 것일까. 쎄라토는 중국시장에 선보인 후 잇달아 판매 신기록을 수립하며 카니발과 옵티마의 부진을 깨끗이 씻어냈다. ‘값싼 차를 판매하는 저가 차 회사’라는 이미지를 벗고 세련되고 젊은 감각을 추구하는 브랜드라는 느낌을 전달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중국시장에서 쎄라토의 성공 사례를 마케팅 관점에서 집중 분석했다. 기사 전문은 DBR 78호(4월 1일자) ‘DBR·현대기아차 케이스스터디’ 코너에 실렸다.
○ 실패를 철저히 분석하다
2002년 12월 DYK는 현지에서 생산된 배기량 1600cc의 ‘천리마’를 선보였다. 신생 브랜드로 시장에 진입한 DYK의 천리마는 출시 첫해인 2003년 4만3934대로 동급 6위를, 2004년 5만5781대로 동급 3위를 기록하는 등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천리마의 성공으로 고무된 DYK는 이후 중국시장 확대를 위한 후속모델로서 다목적차량(MPV)인 카니발과 중형(D급) 차량인 옵티마를 출시하기로 결정했다. 천리마로 구축한 브랜드 인지도를 기반으로 상위 모델 판매를 통해 DYK의 전체 수익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중국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2004년 DYK의 중국 내 총판매량 6만2800대 중 옵티마와 카니발은 각각 3600대(6%)와 3071대(5%)였다. 천리마가 동급에서 시장점유율 17%를 차지한 반면에 옵티마는 중형 D급 시장에서 1%, 카니발은 MPV 시장에서 3%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이때 기아차의 중국 사업을 다시 일으킬 구원투수로 이형근 법인장이 부임했다. 현대차에서 해외마케팅사업부장을 하며 마케팅을 진두지휘했던 이 법인장은 중국에 오자마자 옵티마와 카니발의 실패 원인부터 분석했다. 실패를 거론하는 게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쎄라토의 성공을 위해서는 실패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자체적으로 분석한 핵심 실패 요인은 제대로 된 마케팅 전략의 부재였다. 2005년 2월 실시된 중국시장 내 브랜드 파워 조사 결과 DYK의 브랜드 인지도와 선호도는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소비자들은 DYK를 ‘저가 차량을 판매하는 회사’로 인식했던 셈이다. DYK의 브랜드와 이미지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태에서 품위와 체면 등 상징적 가치를 중시하는 중국 소비자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출시했던 옵티마와 카니발의 실패는 필연적인 결과였다. ▼ 출시 한달 만에 17개 차종 중 6위 급부상 ▼
당시 중국 법인에 근무했던
현대·기아차 중국사업2팀 정순원 부장은 “이미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던 혼다와 GM은 중국시장에 진출할 때 프리미엄 차량을 먼저
선보이는 톱다운(Top-Down) 방식을 취해 성공했다”며 “DYK는 제대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한 후 준중형, 중형 등
순차적으로 차량을 선보이는 보텀업(Bottom-Up) 방식을 취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 반전을 위한 노력
DYK는 옵티마와 카니발의 실패를 딛고 이후 사업전략 수립을 위해 컨설팅사인 액센츄어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프로젝트의 주
목적은 중국 자동차시장의 분석을 바탕으로 DYK의 제품 포트폴리오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프로젝트 결과 DYK는 C1(배기량
1.3L∼1.6L 미만)이나 C2(1.6L∼2.0L 미만)급 차량을 먼저 출시한 뒤 D와 E(2.0L 이상)로 제품 라인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제시됐다.
2004년 중국 자동차시장의 C1급 수요는 전체 자동차시장의
27.4%로 C2급에 이어 두 번째로 컸지만 이미 23개의 모델이 경쟁하고 있는 포화 시장으로 판매 확대에 한계가 있었다. 반면에
C2급의 2004년 시장 비중은 30.8%로 2006년에는 31.8%, 2010년에는 34%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를
고려할 때 C2 시장은 DYK에 매우 매력적인 대안이었다.
DYK는 C2급에서 경쟁력 있는 차량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중국 C2 시장 투입 차량은 해당 시장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현대적 감각을 지니면서 빠른 시일에 투입 가능한 차량이어야
했다. 이러한 조건을 고려할 때 당시 한국에서 새로 출시된 쎄라토가 가장 적합한 모델로 부각됐다.
DYK는
쎄라토를 출시하면서 옵티마와 카니발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통합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IMC·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을 철저히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천리마 때는 가격을 강조했지만 쎄라토는 세련되고 젊은 감각을 내세워 저가
차 생산업체란 이미지를 바꾸는 계기로 삼기로 했다.
○ 쎄라토, ‘풍상’으로 승부하다
현대·기아차에서
손꼽히는 마케팅 전문가인 이 법인장은 생소한 중국시장에서 성공적인 마케팅 활동을 위해 중국 내 전문가들과의 친분 확대에
주력했다. 카니발과 옵티마의 가장 큰 실패 이유를 체계적인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 수립과 실행의 부재로 봤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주요 언론매체의 자동차 전문 기자들과 자주 만나 아이디어를 얻었다. 초신삼양(超新三樣) 전략도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나온 아이디어였다. 2002년, 2003년에 출시돼 이미 안정적인 시장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Elantra, Excelle,
Familia 등 기존의 3강 체제를 언론에서 신삼양(新三樣)이라고 불렀다. 초신삼양은 신삼양과 거리를 두고 이들이 추구하는
‘가족 지향적인 차’ ‘생애 첫 차’ 등의 포지셔닝과 차별화하면서 2005년 이후 출시된 최신 모델인 티다, 포커스와 쎄라토를 한
그룹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만든 용어다. 즉, 쎄라토를 C2급 차종의 새로운 기준인 초신삼양의 한 축으로 포지셔닝했다. 이
법인장은 현지 전문가들에게서 얻은 아이디어를 직원들과 공유하면서 마케팅 전략을 수립했다.
쎄라토는 기아차가 중국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통합마케팅을 실시한 사례로 볼 수 있다. DYK는 쎄라토의 브랜드 콘셉트부터 확정했다. 스타일리시한 외관과
넓은 공간 등 제품에서의 자신감을 통해 준중형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한다는 의미로 ‘풍상(風尙)’이란 키워드를 사용했다. 풍상은
사회적 흐름, 유행, 트렌드, 스타일, 패션이라는 뜻을 내포하는 단어다.
이후 쎄라토 마케팅은 풍상이라는 콘셉트를
일관되게 전달하면서 각 활동이 서로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웠다. 쎄라토 출시 한두 달 전에는 구전 효과를 거두기 위해
‘풍상 스타’라고 명명한 쎄라토 모델을 선정하는 이벤트를 실시했다. 또 인기가수 황정을 내세워 쎄라토 주제가를 알리는 마케팅
활동을 벌였다. 황정이 부른 쎄라토 주제가는 현지 인기가요 순위에서 4위를 차지하는 등 인기를 끌어 ‘풍상’이란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었다.
출시 전부터 철저히 통합마케팅을 펼친 쎄라토는 출시 이후 인지도와 호감도가 급등했다. 출시 직후인
9월 한 달간 쎄라토는 총 5176대가 팔려 C2 차급에서 점유율 6%를 기록해 17개 차종 중 단숨에 6위로 도약했다. 8월
중순 출시 후 2005년 말까지 약 4개월간 총 2만6921대가, 이듬해인 2006년에는 6만9106대가 팔렸다. 이로써 기아차는
전 세계의 모든 자동차회사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중국시장에서 당당히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류강석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DBR 그래픽■ 중국시장서 쎄라토 4가지 성공 비결
[1] 실패경험을 학습도구 활용
기아차의 중국 합자법인인 둥펑웨다기아(DYK)는 과거 옵티마와 카니발의 실패 경험을 미래를 위한 중요한 학습도구로 활용했다. 솔직하면서도 철저하게 과거의 경험을 분석했다. 이로 인해 고객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갖고 자신의 문제점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는 쎄라토 출시를 위한 전략적 과제와 마케팅 방향을 도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또 DYK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시장 및 고객, 경쟁정보를 수집했다. [2] 차별화된 포지셔닝 전략
다수의 강력한 경쟁자가 존재하는 준중형급 시장에 진입하는 쎄라토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차별화된 포지셔닝 전략을 수립하는 게 성공의 관건이었다. DYK는 기존 3강 체제를 구축한 차량에 대항하기 위해 타사 최신모델인 티다, 포커스와 함께 쎄라토를 ‘초신삼양(超新三樣)’으로 분류해 개별 브랜드가 아닌 집단수준으로 경쟁구도를 형성했다. 이를 통해 효과적으로 선발 업체를 견제할 수 있었다. [3] 주도면밀한 통합 마케팅
마케팅 키워드로 선정한 ‘풍상(風尙)’은 가족지향적인 차를 지향하는 기존 경쟁자와 쎄라토를 명확히 차별화시켰다. 풍상 콘셉트를 고객에게 알리기 위해 벌인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활동은 전방위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개별 효과보다는 전체적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일관성을 강조했다. 사전에 철저히 마케팅 전략을 짜서 실행한 결과 각 마케팅 이벤트가 서로 보완적인 작용을 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4] 인터넷 통해 젊은이 ‘유혹’
주요 타깃층인 젊은 세대의 특성을 감안해 비전통적이고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특징으로 하는 다양한 종류의 BTL(Below the Line·4대 매체 이외의 인터넷이나 구전 등을 활용하는 활동) 마케팅을 벌였다. 특히 중국의 젊은층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보급된 인터넷을 적극 활용했다. 인터넷을 통한 차명 공모, 모델 선발대회 등이 그 예다. 브랜드와 유대관계가 형성되면 소비자들은 다른 소비자들에게 긍정적 메시지를 유포한다.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 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78호(2011년 4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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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재해석한 ‘오리시키 콘셉트’ 성공 비결
▼ METATREND Report
일본인 디자이너인 나오키 가와모토(川本尙毅)가 선보인 클러치백은 입체감이 살아있는 여성용 작은 핸드백이다. 하지만 이를 펼치면 순식간에 평면의 패널로 변한다. 그가 디자인한 슈트케이스(여행용 옷가방)도 마찬가지다. 언뜻 보기에는 여느 슈트케이스와 다름없지만 집에 보관할 때에는 슈트케이스를 옷과 함께 펼쳐서 옷걸이에 통째로 걸어둘 수 있다. 이 슈트케이스는 여행 중에는 옷을 담는 공간이 되고, 집에서는 수납공간을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 일반 슈트케이스가 여행 중 요긴하게 쓰여도 집에 보관할 때 공간을 낭비한다는 점을 감안했다. 가와모토는 공간을 변환한 이들 제품을 ‘오리시키 콘셉트’라고 명명했다. 오리시키는 일본식 종이접기 공예인 ‘오리가미(折り紙)’와 방식을 뜻하는 ‘시키(式)’의 합성어이다. 2차원과 3차원의 경계를 넘나드는 디자인으로 심미적 가치를 향상시키고 새로운 기능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공간을 색다르게 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트렌드를 소개한다.
제품개발 ‘분업과 협력의 코드’ 활용 노하우
▼ MIT슬론매니지먼트리뷰
한 컴퓨터 서버 회사는 특정 부품을 한번 개발하기만 하면 여러 제품에 두루두루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공급업체에 부품 개발을 의뢰했다. 물론 이는 이론적으로 실현 가능한 계획이다. 하지만 성능 테스트에서 이 부품을 사용한 제품들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기적 상호작용과 기계적 상호작용, 열 상호작용 등 때문이었다. 이 회사는 부품이 제품 성능에 미치는 영향을 꽤 오랜 시간 연구했고 결국 최종 제품 개발은 하염없이 지연됐다. 결국 이 회사는 제품 개발에 수백만 달러를 쏟아 붓고 난 뒤 특정 부품을 한 개의 플랫폼으로 활용하려는 기존 계획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협업을 하는 서로 다른 조직들이 제대로 융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다. 각기 다른 조직들은 산업, 지리적 위치, 시간대, 비즈니스 문화가 서로 다르다. 따라서 여러 조직이 복잡한 제품을 개발하는 협업을 할 때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작은 실패에서 ‘성공의 길’을 찾아라
▼ 실패학 연구
렌터카 업체인 허츠(Hertz)는 렌터카 시장에서 부동의 1위였다. 허츠는 고객을 여행자로만 한정해 뼈아픈 실책을 저질렀다. 정비소에 차를 맡기고 차를 빌려 타려는 도심의 렌터카 수요를 간과한 것. 결국 허츠는 이 수요를 노리고 시장에 진입한 엔터프라이즈(Enterprize)에 추월당했다. 코닥은 기존 사업에 대한 미련 때문에 실책했다. 코닥은 1981년 디지털 사진이 100년 전통의 필름이나 종이 관련 산업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일찌감치 알아차렸다. 하지만 코닥은 기존 사업을 확대해서 디지털 기술을 역이용할 수 있다고 보고 오히려 기존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했다.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과거의 성공에 지나친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도널드 설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이를 ‘활동적 타성(active inertia)’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기업은 종종 시장의 변화를 무시하고 과거 성공 방식을 답습하곤 한다. 잘나가는 기업일수록 활동적 타성의 덫에 빠질 위험이 높다. 기업들이 실패하는 원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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