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비교적 싸다” 발표가 값인상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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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5일 03시 00분


우정렬 산업부 기자
우정렬 산업부 기자
1일 제분업체인 동아원이 자사의 밀가루 제품 가격을 8.6% 올리겠다며 보낸 보도자료를 읽던 기자는 자료의 한 대목에 눈길이 갔다. 가격 인상의 정당성을 설명하면서 이 업체에서 인용한 자료가 사흘 전 한국소비자원에서 발표한 국제 생필품 가격 비교 결과였기 때문이다.

인용된 부분은 소비자원이 주요 7개국(G7)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 4개국 등 11개국에서 생활필수품 22종의 가격을 비교한 결과 중 밀가루의 국내 가격이 조사 대상국 평균보다 42% 낮다는 내용이었다. 소비자의 권익을 증진하기 위한 공공기관인 소비자원이 국내 밀가루 가격이 외국보다 싸다고 발표하자 식품업체가 이를 가격 인상의 근거로 인용한 것이다.

제분업계는 그동안 물가를 잡으려는 정부의 압박 때문에 원재료 값이 올라도 가격 인상을 못하고 끙끙 앓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소비자원의 발표가 나자 “이때다”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원의 조사 결과에 환호한 곳은 제분업계만이 아니었다. 소비자원은 신선식품의 국내 가격은 비싼 반면 밀가루, 라면, 설탕 등 가공식품은 조사 대상국보다 비교적 싸다고 발표했다. 이런 소비자원의 조사 결과가 그동안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 눌려서 눈치만 봐 온 식품업체 입장에서는 귀가 번쩍 뜨이는 뉴스였던 셈.

실제로 소비자원의 조사 결과 발표가 난 지난달 29일 국내의 한 라면업체 관계자는 소비자·식품 담당 기자들에게 전화를 돌려 “국내 라면 가격이 조사 대상국 평균가격 대비 46%나 낮다는 사실이 보도에 꼭 포함됐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가 사이의 객관적인 물가수준 비교와 정부 차원의 물가대책 수립 지원이라는 원래의 조사 취지와 무관하게 식품업체들에 가격 인상 명분만 제공한 격이 된 소비자원은 서운한 기색이 역력하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한국을 제외하면 조사 대상국이 선진국 중심으로 10개 나라에 불과한데 이 중에서 우리가 상대적으로 싸다고 가격 인상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조사 결과의 오용”이라며 “향후 조사에서는 특정 시점의 가격뿐 아니라 각국의 가격 인상률 등을 포함시켜 오용의 소지를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우정렬 산업부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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