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싸고 풍부한 인터넷 통신망의 시대는 끝났다. 정보화시대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비트(bit)는 고갈되고 있다. 소수의 몰지각한 젊은이들과 구글, 유튜브, 스카이프, 아마존 같은 무임승차 서비스들이 이 시대의 중요한 자원인 통신대역폭(밴드위스·bandwidth)을 상당 부분 차지하면서 밴드위스의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한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피크 밴드위스’라고 부른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같으시죠? 석유 생산량이 정점에 이르는 순간을 ‘피크 오일’이라고 합니다. 경제성을 갖추고 캐낼 수 있는 석유의 양(생산량)이 정점을 찍었다는 뜻이죠. 피크오일이라는 말에는 이 시점에서 석유 가격이 급등해 석유로 지탱돼온 현대 문명도 함께 쇠락하리라는 부정적이고 우울한 전망이 담겨 있습니다.
피크 밴드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밴드위스란 통신망이 초당 주고받을 수 있는 정보량을 뜻하는데 이제 밴드위스 증가량보다 인류가 주고받는 데이터량이 더 빠르게 늘어난다는 겁니다. 사용 가능한 밴드위스 증가량도 정점이라는 얘기죠. 자연스레 인류의 현대문명이 데이터 폭증으로 인한 통신자원 부족으로 쇠락하리라는 부정적인 전망도 등장합니다. 스마트폰이 불통이 되고, 스마트TV는 먹통이 되며, e메일과 인터넷뱅킹이 멈춰서는 시나리오입니다. 올해 만우절, ‘공공지식(Public Knowledge)’이라는 미국의 비정부기구(NGO)가 이 피크 밴드위스라는 개념을 이용해 가짜 논문을 펴내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들은 앞으로 우리는 전서구(傳書鳩·편지를 전하는 비둘기)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그럴듯하게 논문 형식으로 써냈죠.
하지만 단순히 만우절 농담으로 넘기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우리가 이미 체감하고 있듯 우리의 휴대전화 통화 품질은 최근 급속히 나빠지고 있습니다. 통신사들은 스마트폰의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가 늘어나면서 데이터 사용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들은 구글이 지난해 유튜브의 동영상을 지금의 고화질(HD) 방송보다 4배 더 많은 밴드위스가 필요한 ‘4K’라는 초고화질 방송으로 송출한다는 계획을 밝히자 ‘무임승차’라며 구글을 비난했고, 최근 스마트폰에서 스카이프나 카카오톡 같은 무료 인터넷 전화나 문자메시지 서비스가 등장하자 이를 공격했습니다.
이런 논쟁은 결국 서비스를 파는 기업이 밴드위스를 많이 사용하는 일부 사용자(소비자)와 인터넷기업(소비자를 모으도록 돕는 파트너)을 비난하는 이상한 상황으로 끝이 납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논쟁은 벌써 10년 이상 반복됐던 논리입니다. 통신사들은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일정액만 내면 시간제한 없이 전화를 걸 수 있던 시내전화 요금을 시간당 요금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이후 유선 초고속인터넷 시절에도 ‘투자비가 엄청나게 든다’며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부과하는 ‘종량제’를 추진했다가 결국 소비자의 항의로 무산된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통신사들은 “이러다 망한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통신사는 무리한 사업 확장의 실패 외에는 적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무선인터넷 시대에도 똑같은 논리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석유는 유한하지만 기술을 만들어내는 우리의 두뇌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만우절 농담은 농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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