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신세계그룹의 색다른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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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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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 산업부 차장
김상수 산업부 차장
“학자금 문제가 가장 고민이라고 하시더군요.”

2월 초 서울 중구 충무로 신세계 본사 19층 중역회의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임원 회의 도중 한 퇴직자 얘기를 꺼냈다.

“얼마 전에 우리 회사에서 퇴직한 부장 한 분이 자녀 학자금 문제로 큰 걱정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회사를 나가게 되면 대부분 자녀들이 대학을 다니고 있을 때여서 걱정이 배가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도움을 줄 길이 없을까요. 지원책을 한번 검토해 봐주시죠.”

인사팀은 지원 가능한 퇴직자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다른 기업은 어떻게 하는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알아본 결과 외국에서는 퇴직자들의 자녀 학자금을 지원하는 사례가 없었다. 국내에서는 일부 은행이 명예퇴직자들을 대상으로 선별적으로 기간과 자녀 수를 제한해 학자금을 지원하고 있었다.

인사팀에서는 신세계, 웨스틴조선호텔 등 그룹의 11개 모든 계열사에서 15년 이상 일하고 퇴직하는 임원과 20년 이상 근무하다 퇴직하는 부장급 직원을 대상자로 정했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퇴직한 임직원에게도 10년을 소급해 지원하기로 했다. 이러면 올해 1차 지원 대상자는 68명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2002년 이후 퇴직한 소급 적용자가 48명, 매년 퇴직하는 부장·임원 가운데 조건에 맞는 인원이 20명 정도였다. 올해 대상자 68명에 자녀 수에 상관없이 학자금을 줄 때 들어가는 돈은 약 3억 원. 보고를 받은 정 부회장은 “올해부터 당장 시행하자”고 결정했다.

신세계는 3일 임직원 재직뿐 아니라 퇴직 후에도 10년까지 자녀 수에 상관없이 1인당 연간 1000만 원까지 학자금 전액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반응은 다양했다. 시장에서는 직원의 사기진작으로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4일 주가가 2.69% 뛰었다. 신세계 직원에게는 “축하한다. 너무 부럽다”는 주위의 전화가 쇄도했다.

김군선 인사 담당 상무는 퇴직자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았다. 퇴직자들은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거나 “로또 당첨된 기분”이라며 고마워했다. “사실 퇴직자도 퇴직자지만 현재 회사를 다니고 있는 과장급 이상 직원들이 가장 좋아했습니다. 아내들이 ‘우리 남편이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구나’라며 격려를 많이 해줬다고 하네요.” 김 상무의 말이다.

신세계그룹의 11개 계열사 직원은 약 2만2000명에 이른다. 이들의 정년은 만 55세. 부장급 이상 직원은 3년의 승진연한과 2년의 유예기간이 지난 뒤에도 승진이 되지 않으면 회사를 나가야 한다. 신세계가 내놓은 복지책은 파격적이지만 직원들에게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회사 측은 “마음 놓고 일하라”고 내놓은 정책이라고 설명하지만 사실은 “걱정 말고 나가라”는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 퇴직 임직원 자녀의 평균나이는 임원급 22세, 부장급 18세다. 40대 후반∼50대 초반의 샐러리맨들이 회사를 나가고 싶어도 주저하게 되는 첫 번째 이유는 자녀 학자금 걱정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회사로서도 “나가주세요”라고 말하기가 쉬워진다.

직원들의 퇴직을 재촉하는 조치가 될 수도 있는 신세계의 색다른 실험이 다른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김상수 산업부 차장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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