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는 꼬박꼬박 챙겨가면서 이게 뭐하는 거냐. 손해라도 보면 책임질 거냐.” “문자메시지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니냐. 고객들 헛걸음하는 게 안 보이냐.” “대구에 있는 대학생 아들이 다쳐서 병원비를 보내야 하는데 못 보내고 있다. 무슨 동네 금고도 아니고….”
농협의 금융전산망이 마비된 지 이틀째인 13일 오전 11시 농협 영등포지점 앞에는 농협의 안이한 태도를 성토하는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이곳 지점장과 직원 5명은 고개를 숙인 채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나 분을 삭이지 못한 고객들은 “피해를 보상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넷 거래는 물론이고 전국의 모든 영업점에서 19시간가량 금융거래가 전면 중단되는 사상 최악의 금융전산사고가 농협에서 발생했다. 현대캐피탈 해킹 사건으로 고객 불신이 높아진 상황에서 농협의 금융전산망이 마비되는 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금융회사 전반에 대한 공신력이 실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농협은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해 내년에 ‘5대 금융지주회사’로 편입될 예정이지만 사고 원인 파악은 물론이고 복구에 이르기까지 늑장 대처로 일관해 위기관리 능력을 의심받고 있다.
13일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12일 오후 5시 10분경 발생한 전산장애는 31시간이 지난 14일 0시 현재까지도 완전 복구되지 못했다. 19시간 만인 13일 낮 12시 35분에야 창구 입출금, 예·적금 거래, 무통장입금 등 일부 금융거래가 재개됐을 뿐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체크카드 등은 여전히 ‘먹통’ 상태다. 이에 따라 농협의 전국 영업점(1158곳)과 지역 단위조합을 포함한 5000여 점포에서 고객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농협은 전날 발생한 금융사고의 원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여 고객의 불신을 샀다. 농협 측은 “중계서버(IBM서버)에 문제가 생겨 전산장애가 발생한 것”이라며 “정보기술(IT) 협력회사 직원의 노트북에서 잘못된 명령어가 실행되면서 이상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농협은 잘못된 명령어가 실행된 원인이 단순 실수인지, 고의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해당 직원은 “내가 한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농협 측은 해킹의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정보회사 관계자는 “농협의 전체 시스템이 한꺼번에 죽어버린 것이어서 해킹을 당한 것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의 전산담당 임원도 “중계서버에 문제가 생겨도 보통 20분이면 복구하는데 이처럼 길어지는 것은 내부적으로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농협의 전산장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2월 6일에도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2시 10분까지 자동화기기 2000여 대가 작동되지 않았다. 한국씨티은행도 지난해 12월 24일 전산센터 침수로 전산시스템이 6시간 동안 장애를 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농협의 전산장애처럼 이틀에 걸쳐 전산망이 전면 마비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날 농협 측은 고객피해센터를 설치해 피해 사례를 접수하겠다고 밝혔으나 피해보상을 둘러싸고 고객과의 갈등이 예상된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 김영대)는 산하 인터넷범죄수사센터 소속 전문수사관 2명을 이날 농협에 보내 이번 사태가 단순 전산장애인지, 전문 해커가 개입한 범죄인지를 확인하고 있다. 농협 관계자는 “현재 안철수연구소와 함께 노트북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으며 결과를 지켜본 뒤 수사 의뢰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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