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이후 벌써 4번째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정기인사와는 상관없이 고위 임원 4명을 퇴진시키거나 다시 불러들였으며 갑작스럽게 승진도 시켰다. 1년에 한 번 정기인사를 하는 삼성그룹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LG그룹은 여기에 더해 한 번 쓴 임원은 끝까지 믿는다. 얼핏 보면 현대차그룹 임원들은 불안해서 회사 못 다닐 것 같고 LG그룹 임원들은 회사에 충성을 다할 것 같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어떤 방식이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3개 대기업의 인사 스타일은 삼각형의 꼭짓점 3개처럼 다를 뿐이다. ○ 저돌적인 현대차
올해 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김원갑 전 현대하이스코 부회장이 다시 경영에 복귀한 것과 관련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럭비공’ 용병술이 화제다. 대부분의 대기업 오너가 통상 연말이나 연초에 인사를 몰아서 하는 것과 달리 정 회장은 필요에 따라 수시로 하기 때문에 언제 누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경질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8월 미국 앨라배마 공장장을 6개월 만에 교체한 사례, 기아차가 지난해 국내외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었음에도 서영종 기아차 사장을 경질하고 이삼웅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킨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경질된 사람들은 정 회장의 ‘품질경영’ 철학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케이스라는 후문이다.
또 대관(對官)업무를 맡고 있던 정진행 부사장의 사장 승진은 현대차그룹이 대기업 중 처음으로 동반성장 협약을 맺은 다음 날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현대자동차 연구개발(R&D)의 수장이던 이현순 부회장은 갑작스럽게 퇴진했다. 이 부회장의 뒤를 이은 양웅철 사장은 약 20일 뒤 곧바로 부회장이 됐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의 이런 인사 방식은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는 단계고 회장으로서 과감한 리더십을 보여야 할 시기이다 보니 직원 사이에 긴장감, 집중력을 강화해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철저한 실적 위주의 삼성
수시로 인사를 하는 현대차그룹과 달리 삼성그룹은 1년에 한 번만 임원 인사를 한다. 임원이 비리를 저지르거나 근무를 하지 못하는 사고가 나지 않는 한 12월이 아닌 때 인사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번 시키면 적어도 1년은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셈이다.
그러나 철저한 실적 위주의 인사여서 1년 안에 실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면 자리가 위태로운 경우도 많다. 브라운관을 만들던 삼성SDI를 에너지기업으로 탈바꿈시킨 김순택 부회장이나 ‘보르도TV’로 세계를 제패한 후 계속 1위를 지키고 있는 윤부근 사장 등이 실적 위주 인사의 대표적 예다. 평가시스템도 비교적 투명하고 공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회사를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경우도 있는 현대차그룹과는 달리 삼성그룹에서는 한번 잘못되면 회복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인간미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의 인사는 의심스러운 사람은 쓰지 않고 한번 쓴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 의인불용, 용인불의를 철저하게 따른다”고 말했다. ○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는 LG
지난해 9월 LG전자 남용 부회장이 실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을 때 업계에서는 대대적인 후속인사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남 부회장은 이사회 의장으로 올해 3월까지 재직했고 스마트폰 대응에 실패한 안승권 사장은 최고기술책임자(CTO)로 남았다. LG전자 관계자는 “경영 실수를 했을지언정 이 분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계속 이용하는 것이 LG로서는 이득”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LG그룹은 한 번 맡기면 끝까지 믿어주는 인사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어려울 때 사람을 내보내지 않는다’는 인사철학으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LG식 인사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원은 “한 번 더 믿어주는 인사가 정보기술(IT)처럼 급변하는 환경에서는 타이밍을 놓쳐 위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동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어떤 인사 스타일도 정답은 아니다”며 “기업의 문화와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떤 인사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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