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너무 좁다.” “큰물에서 놀고 싶다.” “폼이 나질 않는다.” “기왕 노력할 거면 제대로 보상받고 싶다.”
본글로벌 시리즈의 취재 과정에서 만난 기업인들이 쏟아낸 말이다. 한국사회는 그동안 “왜 한국에는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나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가 없을까”라며 탄식했다.
하지만 한국에도 미래의 잡스나 저커버그가 존재한다. 다만, 지금까지 이들이 주목받지 못했을 뿐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미국이나 중국, 일본 시장에서 큰 성공도 거뒀다. 하지만 아직 성공을 말하기에는 이른 기업이 더 많았다. 이제 막 창업했거나 첫 매출을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 또한 본글로벌이다. ○ 인터넷이 낳은 본글로벌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엔씨소프트 사옥에 200여 명의 젊은이가 모여들었다. ‘소셜게임파티’라는 행사였다. 소셜게임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이나 국내 SNS인 싸이월드 등에서 즐기는 새로운 형태의 온라인게임이다. 이 행사에 참여한 젊은 벤처기업인들은 자발적으로 행사를 만들었다. 다른 기업인들과 해외 소셜게임 벤처기업의 성공 사례나 세계 시장의 변화 동향 등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페이스북에서 즐기는 게임을 만들면 6억 명이라는 거대 시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막 사업을 시작한 이들은 경험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모여 노하우를 교환하고 엔씨소프트와 같은 선배 기업의 조언도 듣는 것이다. 실제로 2007년 단 6명이 창업한 미국의 ‘징가’라는 회사는 페이스북에서 즐기는 게임을 만든 지 3년여 만에 지난해 약 1조 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했다. 인터넷이 국경을 허물면서 안방에서 세계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를 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소셜게임업체 파프리카랩의 김동신 대표는 이런 기회를 보고 2007년 창업했다. 하지만 창업은 쉽지 않았다. 2007년에는 당시 미국에서 막 발매된 애플의 아이폰용 게임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생각에 국내 벤처캐피털은 “한국에는 아이폰이 들어오지도 못할 것이고, 들어와도 안 팔릴 것”이라며 퇴짜를 놓았다.
그래서 2008년 방향을 틀었다. 징가처럼 소셜게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김 대표는 “소셜게임이 뭔지 투자자들에게 설명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며 “당시 투자를 빨리 받고 징가가 시장을 장악하기 전에 제품을 내놓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아쉽다”고 말했다.
시작은 좀 늦었지만 지난해 파프리카랩이 선보인 페이스북 소셜게임 ‘해적의 유산’은 현재 매월 15만 명이 즐기는 인기 게임이 됐다. 그는 “싸이월드나 아이러브스쿨 모두 훌륭한 서비스였지만 ‘로컬마인드’를 가져 안주하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엔 국경이 없지만 그동안 국내 기업들의 사고 범위는 국경에 갇혀 있었다는 얘기다. ○ 생각이 달라진다
최근 아이폰용 영어단어 앱(응용프로그램) 등을 내놓은 포도트리라는 벤처기업은 스마트폰이 열어준 기회를 노렸다. 이들은 창업 단계부터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교포들을 직원으로 채용했다. 그리고 이들이 제작하는 모든 콘텐츠를 한국어를 포함해 최소 4개 언어로 선보인다. 출발부터 세계를 노린 것이다.
이진수 포도트리 대표는 “우리는 0.99달러(약 1100원)라는 낮은 가격의 스마트폰 앱을 만들어 1억6000만 명이 넘는 세계의 애플 제품 사용자 시장을 노린다”며 “국내라면 불가능했겠지만 해외에는 거대한 시장이 있기 때문에 낮은 가격에 앱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미국이나 중국, 인도처럼 내수 시장이 크고 인구가 많은 국가의 기업들 못잖은 ‘가격파괴’ 실험을 하고 있다. 세계 시장을 겨냥한 덕분이다. ○ 똑같이 고생한다면 세계무대 도전을
지난해 창업한 온라인게임 회사 엘타임게임즈는 첫 게임을 만들면서 한국은 건너뛰고 중국 시장을 노려 게임을 개발했다. 창업자인 박재찬 사업총괄이사는 “한국에서는 최신 컴퓨터에서 작동하는 화려한 게임이 대세지만 중국과 동남아시아에는 아직 구형 컴퓨터를 쓰는 사용자가 수억 명 존재한다”며 “이 틈새만 노려도 한국보다 훨씬 큰 시장을 상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현란한 3차원 효과 대신 2차원의 평면적인 그래픽을 사용하고 낮은 성능의 컴퓨터에서도 잘 작동하는 게임을 만들고 있다. 일은 한국에서 하지만 이들은 해외를 먼저 살핀다.
이런 벤처기업의 창업자들은 창업 단계부터 월급 받을 생각은 아예 접는다. 그리고 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밥 먹듯이 밤을 새우고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벤처기업인 상당수가 “사무실을 고를 때 아예 숙식이 가능한 오피스텔을 찾는다”고 말했다.
가혹한 근무 조건이지만 업무 만족도는 높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노려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은 ‘국내용 기업’이 얻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사업에 실패해도 반복해 창업한다. 그리고 다시 세계에 도전한다.
수년 전 국내에서 만든 인터넷 서비스를 들고 실리콘밸리로 건너갔다 실패하고 돌아온 한 벤처기업인의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만든 싸이월드와 미투데이는 한국에서만 머물기 때문에 투자에 대한 기대이익이 작다”며 “똑같이 고생한다면 왜 한국에 머물러야 하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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