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들의 대출 확대 경쟁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슬금슬금 시동을 걸던 시중은행들이 올해 초 중소기업대출 및 퇴직연금, 신용카드 영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것.
실제로 중소기업대출 영업은 국민·신한·우리·하나·기업 등 5대 시중은행에서 3개월 만에 5조 원 이상 증가할 정도로 공세적이었다. 특히 국민은행은 2조 원 이상 증가하면서 경쟁을 이끌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서 사실상 완전히 벗어난 가운데 올해 초 금융지주사 회장과 행장 등 새 경영진 구축을 끝내고 영업대전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시중은행들의 경쟁이야 불가피한 것이겠지만 우려스러운 점은 이 같은 외형경쟁이 과도한 쏠림현상과 함께 ‘후 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최근 우량 중소기업과 퇴직연금, 신용카드 시장에서 은행 간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며 “과거 가계대출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경쟁에서 대상만 바뀌었을 뿐 과열 분위기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행이 이달 6일 발표한 국내 은행의 대출행태 조사에서도 올 2분기 대출태도지수는 9년 만에 가장 높은 21을 기록했다. 대출태도지수가 높다는 것은 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리겠다는 은행이 많다는 의미다.
반면 기업 및 가계의 신용위험정도를 나타내는 신용위험지수도 중소기업, 대기업 가계 가릴 것 없이 3∼10포인트씩 올랐다. 이 조사결과는 은행들이 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지만 앞으로 대출금 회수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자칫 부실이 심각해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현장에서 시중은행들을 감독하는 금융감독원 역시 은행들의 무리한 대출 확장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은행들이 부실채권 등을 정리하면서 자산이 늘어난 데다 올해는 은행권 구조조정 움직임과 맞물려 ‘묻지마’식 덩치 불리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국내 금융권은 외형경쟁이 지나치면 어떤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이미 경험한 바 있다. 2003년 카드대란이나 2009년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사태도 은행 간 경쟁으로 인한 과도한 쏠림으로 불거졌고, 이를 해결하는 데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었다. 또 PF부실 문제는 아직도 ‘뇌관’으로 살아남아 은행들을 괴롭히고 있다.
올해 초 은행들은 이구동성으로 “내실경영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영업경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철저한 ‘리스크 관리’가 동반돼 은행들의 ‘내실 경영’ 다짐이 허언에 그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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