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롯데호텔 개관과 동시에 오픈한 한식당 ‘무궁화’는 지난해 50억 원의 비용을 들여 새 한식당으로 변신했다. 옛 양반이 먹던 ‘반가음식’을 기본으로 개발한 현대식 한식코스 요리를 서비스한다. 롯데호텔 제공
최근 한복 입은 고객이 신라호텔에서 입장을 거부당한 사건을 계기로 특급 호텔들의 ‘한식당 홀대’가 새삼 부각되고 있다. 정부도 특급호텔의 한식당 활성화 방안을 고심하고 있지만 경제적 논리에 밀려 뾰족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한복 사건 이후 김을동 미래희망연대 의원은 한복을 입고 참석한 1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호텔등급 평가기준에서 한식당 운영 가점이 700점 만점에 5점에 불과하다”며 “호텔 한식당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호텔 평가기준에서 한식당 입점에 대한 배점을 높이고 정부 지원을 통해서라도 특급호텔에서 한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아일보 취재결과 실제 호텔 등급 평가기준에서 한식당 운영 가산점은 가점 20점으로 추가가점 항목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전에는 본항목 중 5점에 불과했으나 한식당 장려를 위해 2009년 4월부터 높은 추가 가점을 주고 있다. 가점이 높긴 하지만 특1급 승급을 위해서는 본항목 700점의 90% 이상이라는 조건만 충족되면 되기 때문에 한식당을 갖추지 않아도 승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실제 지난해 노보텔앰배서더강남은 한식당 없이도 특1급으로 승급됐다.
문화부는 농림수산식품부와 함께 지난해에는 특급호텔이 한식당을 개설하면 1억 원의 지원금을 주겠다며 호텔 참여를 장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원한 특급호텔은 한 군데도 없었다. 특급호텔 관계자는 “인테리어 비용도 안 되는 1억 원 받자고 장기적으로 수익성이 없는 사업에 뛰어들 곳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부 관광진흥과 장영화 사무관은 “정부도 특급호텔의 한식당 장려를 고심하고 있지만 사기업인 호텔에 한식당 운영을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한식당 개설 호텔에는 관광진흥개발기금을 우선 융자해주는 등의 금융혜택도 추가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내 19개 특1급 호텔 중 한식당은 롯데호텔서울, 쉐라톤워커힐, 메이필드, 르네상스 등 4곳만 운영하고 있지만 1990년까지는 10여 개 한식당이 운영됐다. 특급 호텔들은 “한식당은 조리과정이 까다롭고 회전율이 낮은 데다 재료비와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 흑자 내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한식당도 잘만 운영하면 충분히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롯데호텔서울의 ‘무궁화’ 사례가 보여준다. 롯데호텔은 지난해 말 50억 원을 들여 무궁화를 지하 1층에서 최상층인 38층으로 옮기고 리노베이션한 뒤 전통 한식을 재해석한 메뉴를 서양식 코스요리 스타일로 제공하고 있다. 리노베이션 전 하루 매출이 500만∼600만 원에 불과했지만 최근 하루 매출은 1200만∼1500만 원에 이른다.
당장 호텔의 한식당을 늘릴 수 없다면 우선 현재 운영 중인 한식 메뉴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식당이 없는 특급호텔들도 대부분 기존 레스토랑에서 한식 메뉴를 운영하고 있다. 그랜드힐튼호텔의 ‘에이트리움 카페’는 보양식 갈비탕, 소갈비구이 등 한식메뉴가 인기이며 W호텔 서울은 ‘키친’ 레스토랑에서 ‘한국의 맛(Taste of Korea)’이라는 한식 코스 메뉴를 판매해 호평을 얻고 있다.
문화부는 신라호텔 사건 이후 전통문화전문가를 섭외해 호텔의 전통문화 서비스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6월 이전에 10개 이상 호텔을 교육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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