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부품·소재 산업 분야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지진 사태 이전부터 한국으로 생산기지 이전을 타진하는 일본 부품·소재 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과 맞물려 고질적인 대일(對日) 무역적자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포스코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특수 선재(와이어 로드)를 만드는 일본 경쟁사 JFE와 NSC가 지진 피해를 입는 바람에 주문량이 급증했다. 연간 생산량(60만 t)의 3분의 1을 한국의 세아특수강 등에 공급하던 JFE의 센다이조강이 침수 피해를 본 것. 포스코는 주문이 밀리자 정기점검까지 미룬 채 증산에 나섰다.
반도체 웨이퍼(반도체 원판)를 생산 중인 LG실트론과 본딩와이어(반도체 회로에 들어가는 도선)를 만드는 MK전자도 일본 부품 기업들의 생산 차질로 특수를 맞았다. 반면 그동안 부품 국산화를 꾸준히 추진해온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은 아직까지 심각한 부품난에 시달리지 않고 있다. 현대차는 일본에 의존하는 부품 비중이 1% 정도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해 26일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지진 이후 일본산 부품 공급이 여의치 않자 도요타와 GM의 미국 및 유럽연합(EU) 공장마저 감산에 들어갔다”며 “공급망에 차질이 생긴 글로벌 기업들이 수입처를 다변화하면 한국과 중국 등 인접국의 부품·소재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완성품 업계에서도 도요타의 지난달 자동차 생산대수가 12만9049대로 지난해 동기 대비 62.7% 급감함에 따라 현대차가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일본 의존도가 심한 부품·소재 분야를 국산화하고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계기로 일본 이외의 수입처를 늘리는 한편 △핵심 부품 및 소재를 생산하는 일본 내 지진 피해 기업들에 대한 투자 유치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라쿠텐과 아우디저팬 SAP저팬 등이 본사 기능을 지진 피해와 거리가 있는 관서 지방으로 옮기기로 결정하는 등 일본 기업들의 해외 이전 가능성이 부쩍 높아진 상황이다.
특히 한국은 이들 일본 부품·소재 기업들이 납품하는 삼성전자, 현대차 등 글로벌 세트 업체들을 보유해 물류비를 아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와 함께 인접국인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값싸고 질 좋은 전기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인프라도 큰 매력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04년부터 일본 기업들의 국내 투자 유치를 지원하는 조직인 저팬데스크(Japan Desk) 활동을 강화할 방침이다.
한편 부품 업계에선 정부가 국내 부품·소재 기업을 육성하는 차원에서 일본 기업을 포함한 해외 인수합병(M&A)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최근 조성하고 있는 부품·소재 분야 M&A 펀드 규모가 5000억 원대에 불과한 데다 투자 실적도 부족해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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