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車사고 나면 왜 무조건 입원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8일 03시 00분


보험 모럴해저드… 자동차사고 환자 입원율 부끄러운 ‘세계 최고수준’

《 “그건 말도 안 되지요. 어떻게 자동차보험료에서 그렇게 많은 금액이 치료비로 나갈 수가 있지요?” 21일(현지 시간) 독일에서만 200만 명의 고객을 보유한 스위스 보험회사 바슬러(Basler)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본부. 한국의 자동차보험 급여액 가운데 개인 치료비 지급액이 40%에 이른다고 하자 현지 보험사 관계자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
볼프강 한더 바슬러 자동차영업본부장은 “우리도 갈수록 높아지는 사고율 때문에 고민하지만, 우리의 골칫거리는 병원비보다 늘어나는 사고와 정비비용”이라며 “사고가 나서 대인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는 전체 사고의 5% 미만”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진출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인지급액이 그 정도로 많다면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험선진국들이 놀라움을 표시할 정도로 한국 자동차사고 환자들의 입원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교통사고 환자의 60∼70%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 특히 목을 삐끗하면서 발생하는 경추염좌 환자 중 건강보험으로 입원하는 사람들은 2007년 기준으로 평균 2.4%인 데 반해 자동차보험 환자는 79.2%에 이른다.

문제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입원율 배경에 병원들의 ‘과잉진료’와 ‘나이롱환자’가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손해보험협회가 114개 병원을 대상으로 점검한 결과 환자 부재율은 19.1%에 달했다. 1051명의 입원환자 중 201명이나 자리를 비웠고, 부재환자 201명 중 93명은 무단외출을 한 상태였다. 보험사들 사이에서 ‘요주의 병원’으로 불리는 서울 강서구의 한 정형외과는 입원환자 4명 중 3명이 무단 외출을 했다.

전문가들은 비정상적으로 자동차사고 입원율이 높은 것에 대해 입원일별로 차등화되는 보험료 외에도 진료수가 체계가 주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보험사가 병원에 교통사고 환자 치료비를 지급할 때 적용되는 ‘자동차보험 진료수가’는 건강보험 가입자에게 적용되는 건강보험 진료수가보다 최대 15%가량 높다. 같은 상해를 입어도 자동차사고로 처리되면 병원에 더 많은 보험금을 주게 돼있는 것. 입원료 체감(입원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입원료를 일정비율씩 삭감)도 다르게 적용돼 자동차보험으로 입원하면 입원기간이 길어져도 병원에 지급되는 입원료가 더디게 줄어든다. 병의원들이 이런 이유로 자동차보험 사고 환자를 반기고, 꼭 필요하지 않은 치료나 입원을 권유해 불필요한 보험금 낭비가 발생한다는 것이 보험업계의 주장이다.

보험 역사가 오래된 이탈리아와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일반 환자와 자동차보험 환자를 따로 구별하지 않는다. 동일한 상해라면 자동차보험이든 건강보험이든 의사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같은 치료가 진행되고 병원에 지급하는 비용도 차이가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매년 자동차보험료의 일정비율이 국민보건서비스(NHS·일종의 건강보험조합)로 빠져나가 개인은 자동차사고를 당하면 보험료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치료를 받으면 그만이다.

독일도 교통사고 피해자의 치료비를 건강보험조합이 먼저 지불하고 이후에 보험사와 정산하는 방식을 취한다. 병원에서의 진료는 자동차사고 여부와 상관없이 ‘진료진단법’에 의해 만들어진 2000여 개 질병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따른다. 진료진단법에서는 병명별로 보험료까지 결정된다. 병원에 대한 관리감독도 철저하다. 독일의 공적 건강보험조합 AOK의 랄프 메처 홍보 매니저는 “병원들의 모럴 해저드를 막기 위해 건강보험조합에서 감사권을 갖고 있다”며 “병원의 청구금액을 검토하고, 차액에 대해서는 청구할 권리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료에서부터 청구, 정산까지 나이롱환자가 들어설 틈을 찾기 힘들다는 얘기다.

자동차보험 과잉진료의 원인으로 진료수가 차이는 수년째 지적돼온 문제이지만 아직까지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토해양부의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기준이 보건복지부의 건강보험 진료수가와 연동돼 있어, 국토부는 복지부와의 협의를 통해 고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정부에서 자동차보험 종합대책을 마련했지만 핵심 사안이던 자동차보험 진료수가 체계 개선 방안 마련은 올 상반기로 미뤄졌다. 순천향대 김헌수 교수는 “자동차보험 수가 일원화 없이는 과잉진료와 모럴 해저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며 “선량한 보험가입자들의 보험료 누수를 막기 위해서라도 수가 일원화 문제에 대한 ‘접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마-프랑크푸르트=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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