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주주권을 투명하게 행사하면 되는 일이지, 대기업 견제나 재벌 때리기를 언급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그림)은 28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의 ‘공적 연기금을 통한 대기업 견제론’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국내 최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은 삼성과 포스코 등 주요 대기업의 경영에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전 이사장은 이날 “(곽승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일일이 코멘트는 하지 않겠다”면서도 “국민연금은 장기투자자로서 당장 배당금을 많이 받는 것보다 주주권을 통해 투자기업의 가치를 높여 중장기적 수익을 얻는 게 낫다”고 말했다. 또 재계의 우려와 관련해선 “의결권 행사의 대상, 범위, 절차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오용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강화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주주권 행사는 기업의 지속 성장을 유도해 주주 가치를 높이는 일이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 이는 글로벌 트렌드다. 특히 국민연금은 자산규모가 27일 기준 338조 원으로 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만 4∼5%에 이른다. 일개 투자자의 범위를 넘어섰다는 얘기다. 잘 모르는 사람은 ‘기업의 지배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투자를 회수하면 그만 아니냐’고 하거나 ‘배당금만 타면 됐지 경영간섭은 왜 하려고 드느냐’고 따지는데, 국민연금을 몰라도 정말 모르고 하는 발언이다. 우리 정도 규모의 투자자는 시장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쉽게 팔지도 못한다. 또 현금유동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당장의 배당금에는 큰 관심이 없다. 기업과 우리는 같은 배를 탄 것과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은 적립액 중 17%인 약 55조 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으며,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기업만 161곳에 이른다.
―‘동반성장’ 같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의결권을 행사하면 기업가치가 오히려 훼손될 수도 있는데….
“곽 위원장이 연기금 의결권 강화 문제를 공론화할 것이라는 얘기는 들어 알고 있었다. 곽 위원장은 정치인이니까…. 미래 어젠다를 띄워야 할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재벌 때리기’가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는데, 나는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문제가 대기업 규제를 목적으로) 이용돼서는 안 되고, 이를 언급할 이유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주주권 행사는 ‘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등 3가지 이슈에 천착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기업경영활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원칙이기 때문이다. 기업에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의 부담을 떠안으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오너 확실한 대기업보다 금융기관에 목소리 더 낼 것” ▼.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라는 게 한번 물꼬가 트이면 나중에라도 정략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지 않겠나.
“그런 우려가
나올 수도 있다. 실제로 주주권이 한번 행사되면 뒤로 물러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국민연금이 다루는 자산규모가 2020년에는
924조 원이 되는 등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보유 지분도 엄청나게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주권 행사 오용을 막도록
의결권 행사의 대상, 범위, 절차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연금이 사외이사를 추천할 때는 산업 및 경제전문가 풀을 구성한 뒤 복수의 인사를 추천하고, 기업이 그중 한 명을 선택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라는 말도 나온다.
“투자한 회사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전문가적 식견을 갖춘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것은
투자자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 방안을 포함해 연기금 주주권 행사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담보하는 방안이 폭넓게 논의돼야
한다.”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를 개선하자는 법안이 2008년 8월 상정됐지만 2년 9개월째 잠자고 있다.
“꼭 법률을 고치지 않고도 ‘운용의 묘’를 살리는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운용위원회에 나오는 정부, 사용자,
근로자 대표들을 금융 전문가로 추천하면 되지 않겠는가. 조직을 떼어내고 제도적으로 완벽하게 만든다고 독립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오너가 확실한 대기업보다 금융기관에 목소리를 더 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미국도 금융위기 이후 금융권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하나금융지주, KB금융지주의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앞으로 목소리를 더 낼 것이다.”
―국민연금은 국민의 돈으로 조성됐다. 실제 주주인 국민의 의사에 반해 주주권이 행사될 개연성도 있지 않나.
“연금을 낸 분들의 의사는 단 하나,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본다. 수익성을 높이되 안전성을 담보해야 한다.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면 국민 의사에 크게 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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