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현지 시간) 미국 중부 네브래스카 주의 소도시 오마하 도심에 위치한 실내 컨벤션센터인 퀘스트센터. 조용한 도시가 오전부터 떠들썩했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회장이 이끄는 미국 버크셔해서웨이의 연례 주주총회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매년 수많은 사람이 운집해 경제를 이야기하는 버크셔해서웨이의 주총은 ‘자본주의 축제’로 불린다. 올해 주총에도 4만여 명의 주주가 몰려 버핏 회장의 ‘혜안’에 귀를 기울였다.
수천 명의 주주는 오전 7시 반 문이 열리는 주총장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새벽부터 행사장 앞에 장사진을 쳤다. 10년째 빠짐없이 주총에 참여했다는, 텍사스 주에서 온 엘리자베스 설리번 씨(57)는 “주총장에 오면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여러 문제에 대해 해답을 가져가는 기분”이라며 “버핏 회장의 말은 어두운 터널 안에서 보이는 한 줄기 빛과 같다”고 말했다.
이날 주총은 홍보 영화 상영, 버핏 회장의 1분기 실적보고와 현안에 대한 모두발언에 이어 오전 9시 15분경부터 하이라이트인 버핏 회장의 ‘마라톤 질의응답’이 시작됐다. 버핏 회장과 찰스 멍거 부회장이 연단에 올라 7시간(점심시간 포함) 동안 주주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 금-원유 투자, 투자철학 안 맞아
버핏 회장은 이날 어떤 자산에 투자해야 하는지에 대한 주주들의 질문에 ‘촌철살인’ 같은 답변을 이어 나가 주목을 끌었다.
그는 금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한 주주의 질문에 “금은 쓸모가 없다”며 “금값이 고점에 근접한 상황에서 금에 뛰어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답변했다. 이어 “사람들은 가격이 오르는 것에 투자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동안 이는 부자가 되는 길이 아니었다”며 “나는 가격이 올라 법석을 떠는 자산보다는 생산할 수 있는 것에 기반한 가치를 가진 자산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금에 투자하는 것에 대한 투자가치 분석이라기보다는 자신의 투자철학에는 맞지 않는다는 설명으로 해석됐다.
그는 한 여성 주주가 원유 투자에 대한 견해를 묻자 “유가의 방향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석유에 투자하는 것을 꺼린다”며 “지적인 사람은 상품에 투기하기보다는 생산적인 자산에 투자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개별 종목보다 인덱스펀드에 투자
버핏 회장은 ‘버크셔해서웨이 주식과 뮤추얼펀드 가운데 어디에 투자하는 것이 좋으냐’는 한 주주의 질문에 “개별 종목보다 (지수가 오르면 수익이 나는) 인덱스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직접 투자보다는 간접 투자를 권고한 것이다. 멍거 부회장은 “버크셔 주식은 (인덱스펀드에 이어) 두 번째로 좋은 투자처가 될 것”이라고 농담을 해 주주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또 버핏 회장은 ‘앞으로 50년을 더 산다면 어떤 업종에 투자하겠느냐’는 질문에는 “기술기업과 에너지기업에 투자하겠다”고 답했다. 버핏 회장이 기술기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그는 또 “앞으로 미국 은행들의 수익성이 21세기 초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웰스파고의 최대주주이며 US뱅코프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 달러 가치는 더 떨어질 것
버핏 회장은 최근 달러 가치의 하락세에 대해 “달러의 구매력이 점차 하락할 것이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며 “단지 어느 정도까지 떨어질 것이냐는 문제만 있을 뿐”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달러 외에도 모든 통화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며 “다만 어떤 통화 가치가 더 빨리 또는 더 느리게 하락할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것과 관련해서는 “미국이 자체 통화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한 재정위기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정가에서 일고 있는 채무 한도 상향 논란에 대해서는 “시간 낭비”라며 “한도를 높이지 않을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소콜, 용서할 수 없다
후계자 1순위로 꼽히다 부당거래 혐의로 사임한 데이비드 소콜 씨에 대해서 버핏 회장은 “용서가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버크셔의 감사위원회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소콜 씨는 자신의 루브리졸 주식 매입에 대해 버핏 회장에게 ‘불완전한 공개’를 했고 주식을 매입한 후 몇 주 지나서 버핏 회장에게 루브리졸을 인수할 것을 권고했다. 버크셔가 루브리졸을 인수한 효과로 소콜 씨의 루브리졸 지분 가치는 300만 달러 늘었다.
버핏 회장은 “소콜이 버크셔의 윤리규정을 위반하고 내부자거래를 한 점은 반문의 여지없이 용서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소콜에게 상황을 자세히 묻지 않은 것은 나의 큰 실수였다”고 강조했다.
버핏 회장은 이날 주총에서 후계자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는 후계자를 묻는 질문에 “화살처럼 곧은 사람이어야 한다. 또 윤리적으로 완전하게 공명정대해야 한다”고만 답했다. ‘버크셔의 재보험 사업부문의 최고경영자(CEO)인 아지트 자인이 후계자가 될 것이냐’는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면서도 자인을 극찬해 그를 후계자로 꼽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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