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고국투자 이렇게 힘들줄은…” 혀 내두른 브라질 교민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9일 03시 00분



“정말 길고도 험난했어요. 해외교포들의 투자도 이렇게 어려운데 한민족의 피가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우리나라가 투자 유치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동부그룹을 상대로 3년에 걸친 법정싸움 끝에 골프장을 지을 수 있게 된 ‘자스타’ 관계자는 8일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자스타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브라질 방문을 계기로 현지에서 의류업체를 운영하는 교포 사업가들이 세운 투자 법인이다. 당시 노 대통령은 고된 이민생활 끝에 성공한 브라질 교포들에게 고국을 위해 투자해줄 것을 적극 권했다. 이에 교포들은 한국에 들어와 전국을 다니면서 적절한 투자처를 물색한 끝에 충북 음성군에 500억 원을 투자해 18홀짜리 골프장을 짓기로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첫 번째 시련은 뜻밖에 청와대에서 시작됐다.
2006년 8월 청와대 경호실이 자체 훈련장을 짓겠다며 해당 국유지에 대한 무상 관리환(국가기관끼리 토지를 무상으로 양여하는 것)을 요청한 것. 지방자치단체(음성군)로부터 사업추진에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들었던 자스타는 이미 주변 사유지를 매입한 뒤였다.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지만 다행히 KOTRA에 파견을 나온 정부 관계자를 통해 청와대의 관리환 요청 철회를 받아낼 수 있었다.

거대한 산을 겨우 넘었지만 더 강력한 시련이 교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식경제부가 최근 작성한 ‘음성군 자곡리 골프장 설립 진행경과’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11월 경험 있는 시공사를 선정하기 위해 인근에서 R골프장을 운영하던 동부건설과 접촉한 게 화근이었다. 고교 선후배 사이인 자스타 관계자가 동부건설 관계자에게 사업계획서 일체를 보여주자 동부그룹이 갑자기 같은 용지에 골프장을 짓겠다고 나선 것. 자스타의 골프장 회원권 분양가(2억∼3억 원)가 자신들이 운영 중인 골프장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그룹은 외투법인이면 국유지 매입 시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외국인 투자지분을 갖고 있던 계열사(동부하이텍)를 사업주체로 내세웠다. 이어 자스타가 2006년 12월 6억6000만 원을 주고 이미 매매계약을 체결한 음성군 차곡리의 임야 소유주에게 접근해 두 배의 현찰(12억3000만 원)을 제시하고 계약을 파기시켰다고 보고서는 썼다. 자스타와 매매계약을 체결키로 했던 인접 임야의 소유주에게도 두 배에 가까운 현금(32억 원)을 주고 동부그룹 김준기 회장의 아들인 남호 씨 명의로 계약을 했다. 브라질 교포들은 한때 사업을 접을 생각까지 했지만, 마침 산림법 개정으로 해당 임야가 없이도 사업추진이 가능해지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자스타에 이어 동부그룹도 해당 용지에 대한 사업제안서를 제출했다. 이에 음성군청이 두 곳의 사업제안서를 모두 받아주면서 소송으로 이어지게 됐다.

결국 행정심판을 거쳐 올 2월 청주지법 소송에서 자스타가 승소함에 따라 교포들은 골프장 건설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예정보다 사업이 5년이나 지연되면서 골프장 이외의 다른 투자계획은 모두 무산됐다. 자스타 관계자는 “브라질 교포들이 국내에 생산공장도 지을 계획이었지만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다들 넌더리를 냈다”고 말했다.

이에 관련해 동부그룹 관계자는 “원래 해당 지역은 리조트종합단지로 키울 계획이었다”며 “자스타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 우리 사업을 추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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