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 시간) 오후 9시 미국 필라델피아 사우스브로드 스트리트의 고풍스러운 파크하이엇호텔 외관에 조명이 켜졌다. 파도처럼 움직이는 불빛은 빨강, 보라, 파랑으로 2∼3초에 한 번씩 바뀌었다. 이 거리에는 벽면을 홀로그램 조명으로 장식해 미디어아트를 연상시키는 병원도 있었다. 필립스가 곳곳에 설치한 조명 덕인지 비 내리는 날씨에도 필라델피아는 인간적 느낌과 세련된 문화적 경험을 동시에 전하고 있었다.
120년 전인 1891년 세계 최초로 백열전구를 만들었던 필립스는 2000년대 중반부터 스스로를 ‘헬스와 참살이(웰빙) 회사’라고 불렀다. 공전(空前)의 히트작이었던 백열전구를 스스로 내던졌다. 그리고 새로운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에 매년 5억 달러 이상 투자해 글로벌 조명 1위로 우뚝 섰다. ‘좋은 빛은 도시의 가치, 인간 삶의 질을 높인다’고 한다.
○ 두려움 없는 도전
사흘 일정으로 17일 개막한 세계 최대 조명기기 박람회 ‘LFI(라이트페어 인터내셔널) 2011’은 2001년에 이어 10년 만에 필라델피아를 개최지로 정했다. “미국 역사를 태동시킨 필라델피아는 최근 다양한 조명으로 주민과 관광객에게 즐거움을 주니까요.”(지아 에프테카 필립스 북미지역 조명 총괄대표)
역사의 태동을 논하자면 필립스도 만만찮다. 19세기 백열전구뿐 아니라 세계 최초의 카세트테이프(1962년), CD플레이어(1982년) 등 20세기 전자산업의 역사를 썼다. 일본 소니가 ‘워크맨’의 영광에 취해 21세기 애플 ‘아이팟’에 밀려났던 것과 달리 필립스는 시장의 변화를 내다보고 일찍 실행에 옮겼다. 2000년대 중반 부진한 사업들을 정리하고 헬스, 가전, 조명 등 세 부문만 남겼다. 그동안 축적한 반도체 기술로 ‘빛의 반도체’라는 LED, 그중에서도 LED 조명시장에 집중 투자했다.
“우리가 만든 백열전구가 퇴출되는 데에 애틋한 노스탤지어(향수)도 있지만, 지속가능한 세상이 돼야 사업도 번창할 수 있죠.”(마크 데용 필립스 글로벌 등기구 조명 대표)
○ LED 조명의 진화
필립스는 이날 박람회에서 75W 백열전구를 대체할 LED 전구(‘엔듀라LED A21 17W’)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75W 백열전구에 비해 소비 전력을 80% 줄이고, 수명은 5만 시간이어서 ‘LED 조명기술의 기념비적 발명’이라는 설명이었다. 광원(光源)에서 나오는 빛의 양인 루멘 수치도 1100이나 된다. 이 신제품은 미국에선 올해 4분기(10∼12월), 다른 나라에선 내년부터 판매되며 가격은 개당 40∼45달러가 될 예정이다. 데용 대표는 “각 가정에 9000억 개 제품이 보급된다고 하면 연간 6억3000만 달러의 전기료를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도로 위 차량 100만 대를 줄이는 것과 같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 효과가 있다”고 했다.
필립스는 2015년 전 세계 LED조명 매출(약 125조 원 예상)의 절반을 차지하겠다는 목표로 지난해에만 무려 10개의 LED 관련 회사를 인수해 기술개발과 디자인에 주력하고 있다. 오가는 자동차가 없으면 스스로 밝기를 줄이는 똑똑한 고속도로 조명, 범죄율을 낮출 수 있는 가로등 조명 등 필립스는 ‘인간과 도시’라는 큰 그림을 보고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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