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표절과 모방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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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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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 산업부 차장
김상수 산업부 차장
“애플은 완벽한 모방기업이다.”

이게 무슨 소린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꼽히는 애플이 ‘완벽한 모방기업’이라니….

오디드 셴카 오하이오 주립대 피셔칼리지 교수가 지난해 자신의 저서인 ‘카피캣(Copycat·모방꾼)’에서 내세운 주장이다. 그는 “애플은 ‘조립 모방’의 대가(大家)”라며 “애플은 혁신기업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애플이 가진 진짜 기술은 자체 아이디어와 외부에서 가져온 기술을 우아한 소프트웨어와 멋진 디자인으로 조합해 내는 데 있다”고 했다. 그런 애플이 삼성을 ‘카피캣’이라고 비난하며 지난달 “삼성전자의 갤럭시S와 갤럭시탭이 애플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했다”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 지방법원에 고소장을 낸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은 이후 세계 모든 스마트폰은 디자인, 사용자환경(UI), 응용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에서 아이폰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똑같이 베끼지는 않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기능을 추가해 새로운 제품들을 만들어냈다. ‘창조적 모방’이다. 세계 각국의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아이폰이라는 일종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른 것으로 봐야 한다. 이처럼 산업계는 서로 끊임없이 상대를 모방하는 전략으로 비즈니스를 발전시켜 왔다. 셴카 교수는 “혁신적 모방만이 복잡하고 빠른 비즈니스 환경을 이겨낼 생존법”이라고 했다.

산업계와 달리 과학계는 모방에 있어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산업계는 결과물을 중시하지만 과학계에서는 ‘발견의 선행성’을 최우선으로 치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발견했느냐가 명예의 기준이며 그런 사람들에게 대체로 노벨상이 돌아간다. 따라서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표절은 가장 큰 불명예로 여겨진다.

과학계에서 표절과 모방을 구분하는 기준은 ‘부가가치’다. 남의 것을 연구도 하지 않고 가져오는 것, 베끼고도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것은 표절이다. 모방은 남의 것을 참고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과거에 엔지니어들은 선진국 제품을 사다가 분해하면서 배웠다.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을 역으로 추적해 처음의 문서나 설계기법 등의 자료를 얻어내는 일)이다. 엔지니어들은 이를 바탕으로 개선된 것을 만들곤 했다. 다만 이때 ‘창조적’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과거 것을 참조해 특정 부분을 개선했다고 해야 한다.” 홍국선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의 얘기다.

한국형 중이온가속기(KoRIA) 기초설계가 미국 미시간주립대의 중이온가속기 설계를 베낀 것을 두고 교과부는 “선진시설의 장점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통상적인 과정의 하나”라고 궁색한 해명자료를 내놨다. 원안 보고서에 출처 표시도 없이 중이온가속기의 핵심인 가속관의 출력 수치를 100% 똑같이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벤치마킹’이라니….

이번 표절 사건으로 한국 과학계 수준의 ‘밑천’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또 우리 과학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과학자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김상수 산업부 차장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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