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문을 연 코오롱건설 ‘수성못 코오롱하늘채’ 본보기집(모델하우스)은 개관 직후부터 관람객들로 활기를 띠었다. 점심시간 전후 ‘피크타임’에는 특화설계된 수납장을 보려는 관람객들이 몰려 발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날 본보기집을 오픈한 화성산업 ‘범어숲 화성파크드림S’에도 수요자들이 몰려 22일까지 총 2만6000명의 관람객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회사 주정수 팀장은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찾아와 브로슈어를 담아 주려고 마련한 쇼핑백이 동나 버렸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5, 6월 대구에는 최근 5년간 최대 물량인 신규 아파트 5900채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외환위기 이후 지난해까지 지역 건설사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대기업마저 분양에 참패하면서 ‘건설사의 무덤’이라는 오명에 시달렸던 ‘유령도시’가 모처럼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
○ 부산 훈풍, 대구로 이동
22일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의 미분양 물량은 지난해 10월 1만5304채에서 올해 4월 말 1만561채로 31% 줄었다. 매매가 역시 지난해 9월을 기점으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진우 부동산114 대구경북지사장은 “다른 지방 광역시들과 마찬가지로 대구의 부동산 시장도 지난해 바닥을 쳤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전세금이 급등하면서 전세금에 조금만 더 보태면 집을 살 수 있는 상황이라 85m² 이하는 기존 주택 물량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상태”라고 전했다.
가격 상승을 겨냥해 부산 서울 등 외지 투자자들이 매매, 분양 시장에 뛰어들면서 부동산 시장이 단기적으로 활황세를 타기 시작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분양대행사 티앤알코리아 김재용 팀장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활황을 겪은 부산에서 재미를 본 투자자들이 그동안 저평가된 대구까지 ‘원정 투자’를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북구 칠곡동 일대 아파트는 이러한 외지 투자자들의 집중 타깃이 되면서 최근 1주일에 100채씩 팔려나가기도 했다고 김 팀장은 전했다.
○ 분양 당일까지 할인 판매
올봄 분양 단지 가운데는 몇 해 전 이미 첫 분양에 나섰으나 ‘참패’를 경험하고 재분양에 나선 곳이 많다. 따라서 당시에 비해 분양가를 파격적으로 낮추고 수요자들의 관심을 끄는 중소형으로 공급 물량을 재편한 물량이 상당수다. 2007년 3.3m²당 1250만 원대에 분양에 나섰던 ‘화성파크드림S’는 중소형 물량을 대폭 늘리면서 870만∼930만 원으로 분양가를 끌어내렸다.
본보기집 밖에서는 이 회사가 지난해까지 미분양 물량에 대해 할인에 나선 대구시내 한 아파트의 입주자 일부가 “최초 분양가와 할인 분양가 사이에 차이가 많다”며 분양가 형평성을 문제 삼아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 현지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악성 미분양에 대해서는 22%까지 파격 할인에 나서는 건설사가 많아 실수요자로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반면 건설사는 신규 분양가를 최대한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수성못 코오롱하늘채’ 본보기집에서도 “어차피 나중에 깎아줄 텐데 미리 깎아주면 안 되느냐”라고 묻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박지억 코오롱건설 과장은 “수요자들이 당장 청약에 뛰어들지 않고 관망할 여지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분양가를 6년 전 수준에 맞추고 중소형 물량을 늘렸다”고 말했다. 27일 ‘이시아폴리스 더샵 2차’ 본보기집을 여는 포스코건설도 올 초 사업승인변경신청을 통해 공급 물량을 조정했다. 이로써 20% 안팎에 불과하던 중소형 물량이 80%대로 크게 늘어났다.
부동산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다른 지방 광역시들과 달리 별다른 경제적 호재가 없다는 것은 여전히 ‘리스크’로 작용할 듯하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대구텍 투자, 신세계의 동대구 복합환승센터 투자 등 ‘잔 펀치’는 있으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 대기업 이전 등 ‘큰 펀치’가 없어 모처럼 불씨를 찾은 부동산 시장이 활활 타오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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