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아자동차의 한 2차 협력업체 임원은 1차 협력업체 직원에게서 “윗선(기아차)에서 4.5%의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했는데, 도와달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임원은 갑작스러운 인하 요구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는 정중한 편이다. 현대자동차의 한 2차 협력업체는 지난달 1차 협력업체로부터 “내려야 한다”는 간단한 전화 통보만으로 납품단가를 인하해야 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전격적인 납품단가 인하로 자동차 부품 업계가 힘들어하고 있다. 지난해 자동차 업계 실적이 좋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동반성장이 화두로 떠올랐고 원자재 자격이 오르는 요즘 상황에서 납품단가를 내리기는 어렵다는 반응이다.
통상 CR(Cost Reduction)라고 불리는 자동차 업계의 납품단가 낮추기는 원래 2∼5년 단위로 이뤄진다. 완성차 업체의 주문 물량이 늘어나면 생산성이 높아지고 생산비용도 낮아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납품단가를 낮추는 게 일반적이다. 이는 차량 개발 단계에서의 계약서에도 명시돼 있는 등 전반적인 계획이 미리 세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 납품단가 인하는 예정에 없던 것이어서 협력업체들은 당황하고 있다.
한 1차 협력업체 관계자는 “미리 결정된 거면 수용하겠는데 이번엔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매출과 이익이 많이 나서 내린다고 하는데 인건비나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은 올랐기 때문에 수용하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다른 부품업체 관계자는 “부품을 만드는 원재료 가격이 연초에 비해 8%가량 올랐다”며 “납품가를 올려야 할 시점에서 오히려 낮추라고 하니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한 1차 협력업체 관계자는 “협력업체들 사이에서는 이번 CR가 현대차그룹 최고위층의 의중인지, 실적을 높이려는 중간 간부의 무리한 요구인지를 파악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의 납품단가 인하도 갑작스럽다는 반응이다. 기아차 조지아 주 공장은 2009년부터 생산을 시작했으며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은 2005년에 완공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협력업체들이 고생하다가, 수익성 있게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한 지는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협력업체들 사이에서는 “이제 좀 할 만하니까 납품단가를 내린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부품업체들은 3월 말 현대차그룹이 1585개 협력업체와 맺은 동반성장 협약식 이후에도 2, 3차 협력사들이 개선된 점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고 밝혔다. 한 1차 협력업체 관계자는 “납품단가를 낮춘 계약서나 공정의뢰서를 쓸 때는 법적으로 각 사 대표 도장이 필요하지만 원청업체 부서장 도장이 들어간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법적 효력이 없지만 어디다 하소연하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계약서의 가격대로 납품하고 있다. 거부했다간 납품이 중단돼 사업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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