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대표적인 강소국(强小國)으로 꼽히는 네덜란드는 실업률은 2009년 기준 3.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3번째로 낮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이 20%를 넘는 청년실업률로 고심하고 있는 데 반해 네덜란드의 청년실업률은 7.3%로 OECD 최저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복지병으로 실업률이 20%에 육박했던 네덜란드가 실업률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던 것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면서 고용안정도 보장하는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 해법 덕분이었다. 1982년 노사정 대타협으로 체결된 바세나르협약으로 최저임금과 공공부문 임금을 동결하고 시간제 고용을 확대하면서 이전까지 한 사람이 하던 일을 여러 사람이 맡도록 하는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 방식을 도입한 것. 그 대신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차별을 없애 시간제 근로자들도 임금이나 휴가, 사회복지에서 정규직과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기업은 노동유연성이 높아지면서 필요할 때마다 적절한 인재를 고용할 수 있게 되고, 시간제 근로자들은 늘어난 일자리로 취업 문턱이 낮아지고 일자리가 없을 때는 정부가 제공하는 실업급여와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상생(相生) 모델인 셈이다.
바세나르협약 이후 상당수의 정규직이 시간제 근로자로 전환하면서 네덜란드에는 1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시간제 고용이 늘면 생산성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네덜란드의 노동생산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작년 말 현재 네덜란드의 시간제 근로자 비중은 36.7%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지만 네덜란드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6.4달러로 한국(25.1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네덜란드식 모델은 제조업 중심의 일자리 창출이 한계에 부딪힌 한국에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학계의 평가다. 특히 ‘고용 미스매치’로 장기 실업 상태에 빠질 우려가 높은 청년실업자는 물론이고 출산·육아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여성과 재취업을 원하는 고령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고용시장에 네덜란드식 모델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정규직에 보장되는 혜택을 줄이는 대신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및 복지 격차를 좁혀야 한다는 것. 최근 시간제 근로자를 포함한 비정규직의 근로 여건이 소폭 개선되고 있지만 정규직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올 3월 현재 시간제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6700원으로 정규직(1만1200원)의 60% 수준에 머물러 있다. 유급휴가나 상여금, 퇴직금 등 근로복지 수혜자나 국민연금,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험 가입자 비율도 10% 안팎에 그친다. 정규직의 80%가량이 근로복지나 사회보험 수혜를 보고 있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또 시간제 고용이 확대되면서 늘어날 일시적인 실업자들을 위한 실업급여와 사회보험 체계 재정비도 필요하다.
윤진호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 모델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근로자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근로 형태를 고를 수 있도록 비정규직에 대한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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