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시절 친구들은 시와 소설을 읽었다. 하지만 소년은 삼성 창업자인 이병철 전 회장의 전기를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다른 책도 많이 읽었지만 기억에 남질 않았다. 오직 이 책의 한마디만이 머리에 콕 박혔다. “나는 즐겁게 살았다.” 이병철 전 회장이 죽기 직전 남겼다는 한마디였다.
전자책 서비스 ‘리디북스’를 만드는 배기식 이니셜커뮤니케이션즈 사장(32)은 “그 전기를 읽은 뒤부터 언제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사는 길이 바로 창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5년 배 사장은 어린 시절 영웅이었던 이 전 회장이 세운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벤처투자팀이었다. 창업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2년 반. 삼성에서 일을 배운 뒤 2007년 사표를 냈다. 배 사장은 “회사를 다니면서 창업 준비를 하면 회사 일도 못하고 창업도 못할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표를 낸 뒤 1년 동안은 무슨 일을 할지만 고민했다. 버틸 돈도 있었다. 학생 때 벌어둔 돈이었다. 1998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 ‘닷컴 열풍’이 불어 50만 원을 투자해 ‘도메인’을 사놨던 덕분이다. 도메인은 ‘www.OOO.com’과 같은 인터넷 주소인데 당시만 해도 개당 1만 원 정도면 살 수 있었다. 인터넷이 낯설었던 기업들은 미리 이런 도메인을 사둘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배 대표는 이를 선점했다가 나중에 기업에 비싼 값에 되팔았다. 이렇게 모은 돈이 1억 원에 가까웠다. 충분히 1, 2년 쯤 버틸 수 있는 돈이었다.
배 사장은 “많은 창업자가 회사를 그만두고 사전 준비 없이 바로 매출을 올릴 생각만 하고 일감을 전 직장에서 들고나온다”며 “그렇게 창업하면 결국 하청업체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준비 기간이 중요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3월 사전조사 끝에 전자책 사업을 시작했다. 그 뒤 3년. 올해 리디북스의 예상 매출은 약 50억 원을 바라본다. 순수하게 소비자에게 전자책을 팔아 벌어들인 돈이다. 교보문고, 인터파크 등 전자책 회사들은 전자책 단말기를 판다거나 콘텐츠를 다른 기업에 판매해 돈을 번다. 소비자 시장만 놓고 보면 리디북스가 이런 업체들과 1위를 다툰다. 작은 회사였지만 서비스가 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보문고는 콘텐츠는 가장 많지만 아직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PC용 전자책 프로그램이 없다. 반면 리디북스는 새로운 전자 기기가 나올 때마다 발 빠르게 대응한다.
배 사장은 “다른 회사는 본질이 콘텐츠 업체이고, 유통업체지만 리디북스는 인터넷 회사이기 때문”이라며 “미국에서 아마존이 전자책 시장에서 1위를 하는 건 직접 책을 제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개발과 기획을 직접 하는 기술 회사인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의 향후 계획은 책을 쉽게 찾고 원하는 정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서비스다. 그는 “공지영 작가의 새 소설이 나오면 출판사는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 등에 광고를 할 수 없다”며 “광고 단가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만든 게 ‘소셜e북’이란 서비스다. 리디북스 서비스를 이용하면 내가 읽고 있는 책과 같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 서로 읽고 있는 다른 책을 추천해주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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