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석동빈 기자의 DRIVEN]닛산 GT-R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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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커브도, 시속300km 질주도 거뜬… ‘보통사람들’의 슈퍼카



‘GT-R’

자동차 마니아들은 이 이름 하나만 들어도 ‘오∼ GT-R’이라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오직 달리기 위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서 탄생한 스포츠카이기 때문일까. 닛산 GT-R이 단지 성능 하나로만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신적인 존재들의 탄생 설화와 같은 차량 개발 스토리가 탄탄하게 깔려 있는 것도 마니아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장신정신으로 GT-R을 완성해나가는 마케팅용 동영상은 보는 이를 숙연하게 만든다. 성능과 함께 이런 감동을 주는 스토리텔링 덕분에 대중 브랜드인 닛산에서 만든 자동차지만 그 상징성은 닛산의 브랜드가치를 훌쩍 뛰어 넘는다. 어디서 이런 GT-R의 독자적 파워가 나오는지 일반 도로와 서킷에서 한계 끝까지 몰아봤다.

○ 안전벨트 경고음, 그런 건 없다.

운전 중 안전벨트를 풀었는데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계기반에는 안전벨트 경고등이 들어왔지만 경고음은 울리지 않았다. 왜일까. 기본적으로 서킷을 달리도록 설계가 됐기 때문이다. 서킷에서는 차에 기본 장착된 3점식 안전벨트 대신 4점식이나 6점식 레이싱용 벨트를 추가로 설치해 착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고음을 삭제한 것이다. 처음부터 레이싱을 목표로 설계가 됐다는 의미다.

닛산은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나 즐길 수 있는 슈퍼카’를 콘셉트로 GT-R을 개발했다. 노면 온도가 차가운 겨울이나 빗길 눈길에서는 취약한 기존 슈퍼카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독자적인 기술로 ‘아테사(ATTESA) E-TS’ 4륜구동 시스템을 개발해 전천후 주행성능을 보이는 것이 장점이다. 아테사 시스템은 엔진의 출력을 최적의 상태로 바퀴에 전달할 뿐만 아니라 차체가 미끄러질 경우 동력을 전후좌우로 적절하게 배분해 운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향이 되게 한다.

전담 기술자가 수작업으로 조립하는 트윈 터보차저 3.8L V6엔진은 일반 고출력 터보차저 엔진과 달리 반응이 빠르고 다루기 쉬워서 더 빨리 GT-R을 몰 수 있도록 해준다. 듀얼 클러치 변속기는 확실한 동력전달 능력과 함께 F1 레이싱 머신 부럽지 않은 신속한 기어 변속이 가능하다.

차체는 슈퍼카에 어울리는 견고함이 자랑이다. 6점식 마운트를 적용한 프런트 및 리어 서스펜션은 U자형과 더블 데크 파이프 프레임을 각각 적용시켜 견고함을 강화시켰다. 서스펜션은 차량 속도, 토크, 횡 가속도, 브레이크 움직임 등 총 11가지 요소를 모니터링 해 궁극의 주행 성능과 핸들링을 제공한다. 덕분에 시속 300km에서도 흔들림 없는 주행이 가능하다.

이런 기술로 만들어진 GT-R은 트랙을 9바퀴 돌면서 브레이크, 엔진, 서스펜션 등의 점검과 길들이기 과정을 거친 뒤 최적이 세팅 상태로 고객에게 최종 전달된다.

○ 무한 안정성이 발군

자료: 한국닛산
자료: 한국닛산
GT-R의 가속페달을 밟으면 약간 이질감이 느껴진다. 급출발 시 바퀴가 헛돌거나 자세가 불안정해지는 여느 슈퍼카들과 달리 화살이 발사되듯이 직선으로 튕겨나간다. 웅크렸다가 훌쩍 도움닫기를 하듯이 앞으로 튀어나갈 때 가속페달과 엔진, 변속기, 바퀴로 연결되는 빡빡한 동력 직결감은 발군이다.

정밀 GPS 측정장비로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시간을 측정한 결과 3.8초가 나왔다. 시속 200km도 12초대면 가능하다. 테스트한 차는 2010년형이었는데 2012년형은 3초 초반도 쉽게 나온다고 한다. 급가속할 때 보통은 튀에서 강하게 밀어주는 느낌인데 GT-R은 타이어가 도로를 잡아당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브레이크로 속도를 줄이다 재가속을 할 때도 반응이 뛰어나다. 마치 엔진의 크랭크축과 도로가 하나로 물려서 전혀 미끄러짐이나 동력손실 없이 가속되는 것 같다. 웬만한 고출력의 차도 시속 250km로 항속하다 가속페달을 누르면 가속감이 거의 감지되지 않고 그냥 부드럽게 속도가 올라가는데 GT-R은 꿈틀꿈틀 가속감이 느껴진다. 서스펜션의 세팅이 상당히 단단해서 노면이 좋지 않은 저속에선 튀면서 약간 불안정한 느낌을 주는 듯하지만 시속 300km 가까이 속도를 올려도 평형감이 유지되는 부분도 감동적이다.

○ 커브길에선 비현실적인 움직임

단지 직선에서 시속 300km를 넘긴다고 슈퍼카는 아니다. GT-R의 강점은 커브길에서 나온다. 500번도 넘게 다녔던 익숙한 커브길을 ‘이렇게 빨리 들어가도 되나’하는 생각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GT-R은 우습다는 듯이 돌아나갔다. 분명히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소리를 내며 코너 바깥쪽으로 조금은 밀려야 하는데 차체는 수평을 유지하며 너무 무덤덤하게 커브길을 정복했다. 물론 레이싱 타이어에 가까운 GT-R 전용 브리지스톤 타이어도 도움을 줬다.

이번에는 속도를 조금 더 높여 돌아봤더니 GT-R만의 특성이 느껴졌다. 전륜이 미끄러지기 시작하자 아테사 시스템은 동력을 순식간에 뒤로 보내면서 차의 자세를 잡아줬다. 그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밟자 차의 앞머리는 더 코너를 파고들며 물리학적으로 상상하기 힘든 속도로 코너를 빠져나왔다. 그것도 너무 쉽게.

닛산의 주장처럼 GT-R은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운전할 수 있는 슈퍼카였다. 레이서급 운전실력이 아니더라도 성능의 90%까지 쉽게 끌어낼 수 있어서 운전이 다소 까다로운 다른 슈퍼카들과는 확실히 차별성을 보였다. 같은 실력을 가진 운전자 2명이 GT-R과 성능이 비슷한 다른 슈퍼카를 각각 서킷에서 운전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GT-R의 승리가 쉽게 점쳐졌다.

○ 너무 쉬운 운전은 ‘독(毒)’

운전하기 쉽고 안정적인 모습은 GT-R의 최대 장점이지만 바로 최대 단점이기도 하다. 차가 앙탈을 부리고 다루기 쉽지 않으면 운전자가 차에 대해 연구하고, 운전실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기 마련인데 GT-R은 첨단기술이 이를 대부분 해결해준다. 운전자는 마치 부속품이 된 듯한 기분이다. 이미 웬만한 실력으로도 성능의 대부분을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에 레이싱 수준의 운전 스킬까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아무리 예뻐도 너무 다루기 쉬운 여자에겐 금방 실증을 느끼는 것이 남자의 마음. GT-R을 새차로 구입한 사람들이 오래 차를 유지하지 않고 금방 내놓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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