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퀄컴 본사. 퀄컴코리아 제공정부가 미래 먹을거리 산업을 키우기 위해 총 691억 원을 투입하는 대형 연구개발(R&D) 사업이 글로벌 통신업체인 미국 퀄컴의 특허권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4세대 이동통신망(롱텀 에볼루션·LTE 어드밴스트) 기기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인 ‘베이스밴드 모뎀칩’ 사업권을 놓고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경쟁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퀄컴과 맺은 특허 계약내용이 불거진 것.
계약서에 따르면 양사가 모뎀칩을 애써 개발해도 퀄컴의 동의 없이는 해외에 수출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수주한 LG전자 컨소시엄은 퀄컴 문제를 조만간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전자업계는 이번 사건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기 업체로 우뚝 섰지만, 아직 퀄컴의 핵심 특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술종속’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지난달 31일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이 이끄는 지식경제부 R&D 전략기획단은 LTE 기기 부품과 태양전지, 전기자동차, 천연신약 등으로 구성된 ‘미래산업선도 조기성과 창출형 R&D 과제’ 사업자를 선정 발표했다. 이 중 삼성전자와 LG전자 컨소시엄이 맞붙어 업계의 관심이 쏠린 ‘IT 융복합 기기용 핵심부품 과제(LTE 어드밴스트용 베이스밴드 모뎀칩 등)’에 LG전자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 컨소시엄은 지난달 퀄컴이 국내 제조업체와 맺은 특허권 계약서의 일부 조항을 지경부에 공개하면서 문제를 제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조항은 ‘휴대전화 제조사는 자사(自社) 제품에 사용하는 것 이외의 목적으로 퀄컴 특허를 사용한 부품(베이스밴드 모뎀칩 등)을 개발하거나 외주 생산하는 것을 금한다’고 돼 있다. 이는 양사 중 어느 한 곳도 개발을 마친 모뎀칩을 퀄컴의 동의 없이 해외에 내다팔 수 없음을 뜻한다. 퀄컴은 휴대전화 통신기술의 상당수를 원천 특허로 보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컨소시엄 주관사로 기술개발 전 과정을 직접 주도하겠다는 뜻을 밝힌 LG전자와 달리 삼성전자는 컨소시엄 참여 중소업체들을 개발 전면에 세우기로 했다. 또 최종 개발된 부품을 판로 확보 차원에서 주관사가 사줄 것이냐는 지경부 질의에 LG전자는 동의했지만 삼성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삼성이 퀄컴과의 특허권 계약서에 따른 마찰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결국 지경부 R&D전략기획단 평가위원들은 주관사의 사업 참여의지 항목에서 LG전자 측에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지경부와 민간 평가위원들은 삼성전자 컨소시엄의 문제 제기로 뒤늦게 퀄컴과의 특허권 문제에 주목하고 사업자 선정 직전인 지난달에야 LG전자에 “특허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물었다. 이에 LG전자 측은 “퀄컴과 협상을 통해 모뎀칩 개발과 생산에 대한 동의를 얻을 수 있다”고 회신했다. 이에 따라 LG전자는 이번주까지 지경부 R&D전략기획단에 퀄컴으로부터 생산 및 판매에 대한 동의를 얻었다는 내용을 입증하는 문건을 보여주기로 했다.
전자업계에선 이번 사건이 1995년 3세대 이동통신 기술인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을 퀄컴으로부터 도입해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핵심특허에 의존하는 뼈아픈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본다. 실제로 정부는 퀄컴이 한국에서만 지난해까지 5조 원이 넘는 로열티 수익을 챙긴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내 대형 로펌의 변리사는 “어차피 LG전자가 LTE용 베이스밴드 모뎀칩을 개발해도 이미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퀄컴의 시장지배력이 워낙 막강해 적수가 될 수 없다”며 “퀄컴이 이런 측면을 고려해서 LG의 요청을 들어줬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05년 삼성전자가 3세대 베이스밴드 모뎀칩을 독자 개발했지만, 퀄컴의 견제에 밀려 끝내 상업화가 되지 못했다.
지경부 관계자는 “기술후진국이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당장 돈이 안돼도 꾸준히 표준특허 개발에 도전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지난 16년간 이어져온 퀄컴에 대한 기술종속을 완전히 벗어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베이스밴드 모뎀칩 ::
음성이나 데이터를 통신방식에 맞춰 무선 송수신이 가능하도록 변환해주는 핵심 부품으로 정부는 4세대(4G) 이동통신용 베이스밴드 모뎀칩 개발을 미래산업선도기술 개발과제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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