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과일-채소, 종간교배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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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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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럼코트… 쌈추… 잡종이 순종 밀어낼 판

플럼코트(위)와 쌈추
플럼코트(위)와 쌈추
라이거(수사자+암호랑이), 졸스(얼룩말 수컷+암말), 노새(수탕나귀+암말), 코이독(수코요테+암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서로 다른 종(種) 사이의 잡종은 아주 드물게 자연적으로 발생해 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간은 종간교잡을 호기심 충족 또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종간교잡종인 노새는 말의 순발력과 당나귀의 지구력을 갖춰 힘든 일을 시키기에 적합하다. 노새는 말을 길렀던 히타이트족과 당나귀를 기르던 셈족이 이란 고원에서 만남으로써 탄생했다.

이런 종간교잡은 식물계에서도 일어난다. 다만 1936년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가 식물 종간교잡의 비밀을 밝히기 전에는 이종교배 식물의 정체를 아무도 알지 못했다. 우 박사는 유채가 배추와 양배추의 자연교잡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식물의 인공적 종간교잡은 동물의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워 본격적인 이용이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농업기술이 발달하면서 종간교잡 작물이 하나둘 우리 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제주의 특산물로 떠오른 청견은 귤(밀감)과 오렌지의 교잡종이다. 아직 국내에서 흔히 볼 수는 없지만 체리와 서양 자두를 교잡한 체리플럼(Cherry-Plum)도 있다.

식물의 종간교잡은 여러 장점이 있다. 종간교잡은 우선 ‘부모’가 되는 식물의 장점을 가져올 수 있다. 유실수의 경우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맛을 내는 과일을 만들어낼 수 있고 개량을 통해 크고 당도가 높은 과실을 얻을 수도 있다. 또 종간교잡 작물은 식물이 불리한 환경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목(臺木)으로 쓸 수도 있다.(‘작은 정원 큰 행복’ 참조)

최근 국내에서도 종간교잡 작물의 개발이 활성화되고 있다. ‘O₂’는 종간교잡으로 더 맛있고 쓰임새 많은 과일과 채소를 만들어내는 현장을 다녀왔다.

○ 자두+살구=플럼코트

경기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국내 최초로 자두와 살구의 종간교잡종을 만들어낸 곳이다. 원예특작과학원은 2007년 ‘하모니’에 이어 지난해 ‘티파티’의 육종에 성공했다.

남은영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연구사(위쪽)가 자두-살구 교잡종인 플루오트 열매를 바라보고 있다. 남 연구사는 최초의 국산 플루오트 중 하나인 ‘티파니’를 지난해 육종해 냈다. 아직은 수확철이 아니라 열매가 파랗다. 기자가 방문한 21일 쌈추 개발자인 이관호 교수는 학교 안 비닐하우스에서 종자 수확에 한창이었다. 이 교수는 ‘짝퉁 쌈추’가 시중에 나오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어린 배춧잎을 쌈추라며 파는 경우가 있더군요. 어떻게 구별하느냐고요? 쌈추는 최종 개량 과정에서 솜털이 없어졌습니다. 솜털이 있는 것은 진짜 쌈추가 아닙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남은영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연구사(위쪽)가 자두-살구 교잡종인 플루오트 열매를 바라보고 있다. 남 연구사는 최초의 국산 플루오트 중 하나인 ‘티파니’를 지난해 육종해 냈다. 아직은 수확철이 아니라 열매가 파랗다. 기자가 방문한 21일 쌈추 개발자인 이관호 교수는 학교 안 비닐하우스에서 종자 수확에 한창이었다. 이 교수는 ‘짝퉁 쌈추’가 시중에 나오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어린 배춧잎을 쌈추라며 파는 경우가 있더군요. 어떻게 구별하느냐고요? 쌈추는 최종 개량 과정에서 솜털이 없어졌습니다. 솜털이 있는 것은 진짜 쌈추가 아닙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자두와 살구의 종간교잡종에는 플럼코트(Plumcot=Plum·자두+Apricot·살구)와 플루오트(Pluot), 애프리움(Aprium)이 있다. 플럼코트는 부계가 자두, 모계가 살구다. 플루오트는 플럼코트에 다시 자두를, 애프리움은 플럼코트에 살구를 교배시킨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만들어진 자두-살구 잡종은 1755년 유럽에서 최초로 보고됐다. 19세기 초에는 살구의 원산지인 중국에서 자연교잡으로 생긴 자두-살구 잡종이 일본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지금은 매실과 살구의 자연교잡종인 ‘풍후(豊後)’, 자두와 매실의 자연교잡종인 ‘이매(李梅)’ 등이 새로운 품종으로 이용되고 있다.(원예특작과학원 자료)

원예특작과학원의 하모니와 티파니는 모두 플럼코트다. 플럼코트는 자두와 살구의 중간 맛이 난다. 티파니를 육종한 남은영 연구사는 “살구의 탄탄한 과육과 단맛, 자두의 붉은 빛깔과 풍부한 과즙이 어우러졌다”고 설명했다. 하모니와 티파니는 일반적인 살구(60∼80g)보다 크다(90g). 하모니는 과육이 짙은 황색, 티파니는 붉은색이다. 두 품종 모두 일반적인 자두나 살구보다 플라보노이드(식물의 색을 내는 색소로 항암과 심장질환 예방 효과가 있음) 함유량이 훨씬 높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자두-살구 잡종의 육종이 이뤄져 1990년대 초부터 민간 육종회사인 자이거제네틱스가 집중적으로 보급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소비자들이 비교적 쉽게 자두-살구 교잡종 과실을 접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생산량이 적어 산지에서 거의 다 소비된다.

그나마 올해부터 원예특작과학원이 묘목의 대량생산에 나서 조만간 일반 소비자들도 쉽게 플럼코트 맛을 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원예특작과학원은 올해부터 대형 종묘사들에 접붙이기용 플럼코트 가지를 공급하고 있다. 종묘사들은 이 가지를 살구 등에 접붙여 묘목을 만들어 낸다. 이런 묘목은 내년부터 시중에 공급될 예정이다.

자두와 살구의 교잡은 꽃가루받이만 하면 되는 것 같아 언뜻 쉬워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수정된 꽃에서 열매가 달리는 비율(착과율)이 2∼3%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맛이 좋은 과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씨앗에서 나온 묘목 중 형질이 우수한 것만을 골라내야 한다. 이런 이유로 1999년 육종을 시작한 하모니와 티파니를 10여년 만에야 일반에 공급할 수 있게 됐다.

○ 배추+양배추=쌈추

‘쌈’은 한국 음식문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우리 조상들은 각종 산나물과 상추 배추 호박잎은 물론이고 미역과 다시마 같은 해초로도 밥을 싸 먹었다. 쌈은 들에서 일을 하다 밭에서 딴 채소잎에 밥을 싸먹는 ‘들밥’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쌈추는 이런 쌈문화에 정점을 찍을 수 있는 채소다. 한국농수산대의 이관호 교수는 20여 년의 연구 끝에 배추와 양배추의 종간교잡으로 쌈추를 만들어냈다. 이 교수는 “쌈추는 크기와 모양, 맛에서 쌈을 위해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쌈추의 잎은 부채처럼 둥글다. 배추의 쌉쌀한 맛과 양배추의 고소하고 단 맛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영양성분도 많아 칼슘은 배추의 3배, 상추의 5배나 많이 들어 있다. 철분 함량은 배추 상추의 서너 배다. 비타민A가 풍부하며 항암효과가 있는 아스코르브산 함량은 양배추의 2배, 배추의 서너 배, 상추의 12배다.(두산백과 참조)

쌈추 개발의 기초가 된 것은 1936년 우장춘 박사가 배추속(屬) 식물의 종간교잡을 연구해 내놓은 ‘종(種)의 합성’이란 논문이다. 우 박사는 배추와 양배추, 흑겨자 등 같은 속에 속하는 종들을 교배하면 새로운 식물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내 세계 육종학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학계의 정설은 같은 종끼리만 교배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채소의 종간교배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경우 종간 잡종의 배아는 수정 후 5일 이내에 죽어버린다. 이 교수는 잡종 배아를 배양하는 방법으로 장애를 극복했다. 그리고 다양한 조합으로 교잡을 거듭해 쌈추를 만들어냈다.

이 교수는 1998년 쌈추의 육종에 성공했다. 그러나 쌈추 잎에 있는 솜털이 ‘옥에 티’였다. 그는 다시 품종개량을 거듭해 2002년 솜털이 없는 쌈추를 만들어냈다. 이후에도 쌈추의 품종개량에 주력해 홍쌈추와 쌈배추 등을 육종했다. 케일과 꽃적양배추를 교잡한 로얄채도 개발했다.

한편 최근에는 종보다 한 단계 높은 속간교잡도 이뤄지고 있다. 벤처기업 바이오브리딩연구소가 만든 배무채는 배추와 무를 교잡한 식물이다. 전체적으로 배추와 무의 중간 맛이 나지만 고추냉이 같은 매운맛이 단맛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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