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하이닉스반도체, 우리금융지주, 대한통운 등 예상 인수가격만 수조 원대에 이르는 인수합병(M&A) 매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런 굵직굵직한 M&A 얘기가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논란이 있다. 바로 ‘승자의 저주’다.
대형 M&A 때마다 승자의 저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건 왜일까. 과열 경쟁에 따른 인수가격 상승, 인수 기업 오너의 과시욕 등의 요인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수학적 기업가치 산정 측면에서만 본다면 통계학에서 흔히 말하는 ‘긍정 오류’에 빠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긍정 오류는 참이 아닌데도 참이라고 그릇되게 판단할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M&A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계량화할 때 시너지의 실체가 없는데도 있다고 오판하는 경우다.
모두가 승자의 저주에 대해 알고 있는데도 과도한 인수가격을 써 내는 기업이 매번 나오는 건 통계학에서 긍정 오류를 완벽하게 없애기 힘들다는 사실과도 일맥상통한다. 아무리 과학적인 모델을 활용해도 가치평가 방법론, 성장률 및 할인율 가정치 등에 따라 인수금액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사실 인수가격의 적정성은 그 시점에선 누구도 판단하기 힘든 난제다. 100% 정확한 평가는 사후에 이뤄진다. 따라서 당장의 인수가격 못지않게 신경 써야 할 문제는 M&A 이후 어떻게 가치 창출을 극대화할 것이냐다.
성공적 M&A를 위해 적정한 인수가격을 써내고 필요한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효과적인 인수후통합(PMI·Post-Merger Integration)을 통한 가치 창출이다.
많은 연구 결과 M&A 실패의 주된 원인으로 PMI의 실패가 지목됐다. 특히 문화적 충돌, 조직 내 의사소통의 실패, 직원들의 사기 저하 등 통합 과정에서 부닥치는 여러 인사·조직·문화적 이슈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이런 연구들이 시사하는 것은 인수기업이 피인수기업에 대한 ‘점령군 의식’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국경 간 M&A, 특히 신흥시장 권역 내 기업들이 선진경제권 기업을 인수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는 요즘 더욱 명심해야 할 교훈이다.
PMI 프로세스를 M&A 딜이 시작될 때부터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글자대로라면 PMI는 조직 구조, 인사·보상제도, 영업망, 공급망, 정보기술(IT) 인프라, 조직문화 등 제반 요소들을 인수 후 ‘사후적’으로 통합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액센추어는 M&A와 관련된 잘못된 통념 중 하나가 ‘PMI 프로세스는 M&A 협상을 모두 끝낸 후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M&A의 성공 확률을 높이려면 인수가격을 결정하는 협상 초기부터 PMI를 진행해야 한다는 게 액센추어의 분석이다.
M&A는 인수자 시각만 중요한 일방거래가 아니라 인수자와 매각자 모두가 관여하는 쌍방거래다. 양자 간 협력 없이 인수기업의 문화를 무조건 이식하려 든다면 십중팔구 실패로 끝난다. 당장의 인수가격 산정에만 집착해 통합 후의 청사진을 그려내는 작업을 뒷전으로 미뤄서도 안 된다. PMI는 인수 후 의당 뒤따르는 작업이 아니라 가치 창출을 위한 전략이라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점령군 의식을 버리고 전략적으로 PMI를 추진할 때 ‘승자의 저주’가 ‘승자의 축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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