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경제]이석채 KT 회장이 재정부 예산실장 찾은 까닭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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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 1층 로비. 백발의 한 신사가 김동연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의 배웅을 받았습니다. 300조 원 넘는 예산을 주무르며 관가에서 ‘갑(甲) 중의 갑’으로 불리는 김 실장이 백발의 신사 앞에서 군기가 바짝 든 열중쉬어 자세로 경청하는 모습이 특이했습니다.

백발의 신사는 다름 아닌 이석채 KT 회장이었습니다. 마침 이날은 재정부 예산실이 내년도 각 부처 예산안 요구 현황을 발표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이 회장이 왜 뜬금없이 과천에 나타났을까요?

이 회장은 김 실장에게 “예산은 단순히 돈을 쓰는 게 아니라 국가정책 집행의 근간”이라며 “예산실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포퓰리즘에 흔들리면 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언뜻 선배의 잔소리 같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30년 예산공무원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어린 당부였습니다.

이제는 정보기술(IT) 전문가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이 회장이지만 알고 보면 그는 과거 경제기획원에서 잔뼈가 굵으며 1994년 예산실장까지 지낸 정통 예산맨입니다. 예산실에서 이 회장은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공무원 정원을 묶고 방위비 증가를 억제하는 한편 사회기반시설(SOC) 투자는 획기적으로 늘려 정부 예산에 투자라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한 해 앞도 못 내다봐 번번이 추가경정예산을 짜던 시절, 향후 5년간 예산 골격을 잡는 중기재정운용계획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예산실에서는 우리나라 재정 역사는 ‘이석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이 회장이 과천을 들른 날, 재정부는 각 부처가 요구한 예산 총규모가 332조6000억 원에 이른다고 발표했습니다.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 취득세 보전 등 나랏돈 씀씀이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지는 상황입니다. 이 회장의 고언대로 예산실이 금고지기 역할을 충실히 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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