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투자자들이 정말 신뢰하고 존경하는 펀드 매니저가 있습니까. 일관된 투자원칙과 철학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그런 이들이 있나요. 이게 안 돼 있는데 ‘헤지펀드’가 당장 도입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얼마 전 저녁자리에서 만난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헤지펀드의 국내 도입을 앞두고 이런 아쉬움을 토로했다. 고객의 돈을 맡아 관리하는 운용업계의 기본 중의 기본은 당연히 ‘신뢰’다. 억 단위에 이르는 거액을 위탁받아 일정 수익 이상을 추구하게 되는 헤지펀드라면 말할 것도 없다. 투자자는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매니저의 역량을 믿고 돈을 맡긴다. 자신의 자산을 관리하고 불려나가는 이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시장은 제대로 굴러가기 어렵다.
그의 아쉬움은 여기에 있었다. “국내에 몇몇 ‘스타 매니저’들은 있을지 모르지만 외국처럼 투자자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끌어내는 이들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때그때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유행 상품에 맞춰 운용 스타일을 바꿔버리거나 펀드매니저의 교체가 유독 잦은 우리 자본시장에서 워런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처럼 자신만의 일관된 투자철학으로 투자자들과 소통하는 거장을 만나기란 사실상 힘들다.
헤지펀드는 요즘 증권업계의 뜨거운 이슈다. 헤지펀드의 도입을 위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고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고 있다. 9월경 개정령이 시행된다면 연내에 ‘제1호’ 헤지펀드가 탄생할 수 있다. 하지만 ‘신뢰받는 매니저가 없다’는 그의 지적처럼 헤지펀드를 둘러싼 들뜬 기대에 앞서 우리가 쉽게 간과하거나 놓치고 있는 좀 더 본질적인 것들은 여전히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운용사의 한 임원은 “현재 헤지펀드에 쏟아지는 관심 중 투자자 보호에 관련된 것은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말한다. 헤지펀드 담론들이 온통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금융회사의 자격, 관련 제도 및 규제사항, 헤지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투자자 기준 등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헤지펀드는 투자 대상이 광범위하고 기존 펀드의 운용과는 차별화되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에 상품 구조가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상품을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을 앞두고 금융당국이나 업계는 글로벌 자본시장을 선도할 토종 금융회사의 탄생을 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헤지펀드라는 첨단 금융상품이 새롭게 도입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 자본시장이 얼마나 기본에 충실하게 가고 있는지 찬찬히 점검해보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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