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1980년대 ‘상사맨’이라는 타이틀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단순히 무역중개상 수준이 아니라 수출을 주도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외국을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다는 장점은 덤이었다.
하지만 개별 대기업들이 속속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종합상사는 자원 개발 등 다른 수익사업에 눈을 돌려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경제계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많이 낮아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대기업들이 종합상사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시 주목하고 있다. 별도로 해외 네트워크를 갖추고 현지에 사무실까지 두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설령 비용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해외에서 잔뼈가 굵은 종합상사 인재들의 고급 정보력과 돌파 노하우를 갖추기란 쉽지 않다.
포스코는 지난해 8월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했다. 세계 60여 개국 95곳에 거점을 둔 대우인터내셔널을 통해 현지의 생생한 정보를 얻어 해외 진출에 가속도를 붙이겠다는 의도다. 현재 대우인터내셔널은 포스코건설 등 포스코 계열사와 발전, 정보기술(IT), 철도, 항만 등 다양한 분야에서 44개의 해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도 포스코와 함께 커나갈 수 있어 ‘윈윈’이다. 실제로 대우인터내셔널은 인수 후 포스코의 수출물량 1108만 t가운데 20%인 227만 t을 맡아오고 있다. 후년에는 수출물량이 350만 t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포스코를 등에 업고 종합상사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것이다.
종합상사 ‘모터’를 달고 해외 개척에 나선 기업은 또 있다. GS그룹은 2009년 ㈜쌍용을 인수해 GS글로벌로 탈바꿈시켰다. GS글로벌 직원은 인수 전 150명에서 239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GS칼텍스의 석유제품 수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 ‘석유화학팀’을 3개나 새로 꾸렸다. 실제로 지난해 GS글로벌의 석유화학 관련 매출은 1522억 원이었지만 올해는 6121억 원으로 4배 이상으로 뛰었다.
향후 GS홈쇼핑 등과도 손잡고 해외 제품을 소싱해 오는 등 각종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게 GS글로벌의 계획이다. GS그룹 관계자는 “GS글로벌의 해외 네트워크와 사업 역량 덕분에 그동안 GS건설, GS칼텍스 등 각 계열사가 따로 처리하던 수출업무가 일원화돼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같은 해 현대중공업에 인수된 현대종합상사 역시 신흥시장에서 강점을 인정받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러시아 연해주에서 진행하던 농업사업은 아예 위탁경영하고 있을 정도다. 이 밖에도 현대중공업은 기계, 플랜트 분야 수출에서 현대종합상사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5월 현대중공업이 미국 SCE사와 초고압변압기 장기공급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을 때도 상사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한몫을 톡톡히 했다. 입찰정보 취득부터 현지 업체와 갈등이 생겼을 때 해결하는 것까지 현지인들과 유대관계를 돈독히 쌓아온 상사가 보탬이 됐다.
그 결과 현대중공업은 9월 미국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시에 한국 기업으로선 최초로 변압기 공장을 지었다. 현대종합상사 역시 휴스턴지사를 새로 만들어 현지 시장 개척부터 영업,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측은 “기업 혼자 새로운 분야를 처음부터 개척하기에는 리스크가 있다”며 “종합상사와 손을 잡으니 훨씬 효율적으로 사업 진행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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