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최초로 계약직으로 입행해 과장이 된 이애리 씨는 14일 “각 부문의 많은 비정규직이 부족한 저를 보고 희망과 도전 의지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일자리가 없다고 세상을 원망하는 젊은이들에게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나이가 많아도 열심히 노력하면 얼마든지 길이 열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고졸 일반 계약직으로 입행해 정규직으로 올라섰고 과장이 된 기업은행 용산지점 이애리 과장(48)의 말이다. 그는 13일 발표된 기업은행의 하반기 정기인사에서 과장으로 승진했다. 기업은행에서 계약직으로 출발해 정규직 과장이 된 사례는 그가 처음이다.
2002년 4월 창구업무 계약직으로 입행한 그는 4년 만인 2006년 정규직원이 됐다. 이후 5년 반 만에 과장으로 승진했다. 대학을 졸업한 일반 정규직도 과장이 되는 데 7년 정도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초고속 승진이다. 1982년 서울 해성여상을 졸업한 이 과장은 1994년 제일은행에 입행해 창구 업무를 맡았지만 2002년 초 구조조정 때 해고됐다. 당시 “다른 직장을 구하면 반드시 정규직원이 되어 이런 설움을 겪지 않겠다고 입술을 깨물었다”고 했다.
그해 기업은행에 다시 입행한 이 과장은 혹독할 정도의 자기계발에 나섰다. 고교 졸업 후 20여 년 만에 야간대학에 진학했다. 2005년 말 기업은행은 시험을 통해 계약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이미 40대가 된 그는 20대가 대부분인 동기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
단순 창구업무에 익숙했던 그가 여수신 중심의 정규직 업무를 익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매일 밤 12시까지 사무실에 혼자 남아 업무를 복기하고, 여수신 규정집을 포함한 업무 관련 도서를 독파했다. 주말도 반납하고 도서관으로 출근해 같은 과정을 되풀이했다. 이 과장은 2008년 과장 승진 자격자를 가리는 시험을 치렀다. 여신, 수신, 외환 등 3개 과목에 합격해야 하는 시험에서 그는 1년 만에,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통과했다. 3년여가 흐른 13일 그녀는 마침내 과장 승진 통보를 받았다.
현재 기업은행에는 총 1325명의 일반 계약직원이 있다. 정규직으로 전환은 됐지만 과장으로 승진하지 못한 직원도 506명이다. 기업은행 안에서만 그를 역할 모델로 삼는 사람이 1800명이 넘는 셈이다. “인사 발표 후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동료들의 사내 메신저가 쏟아졌어요. 저를 통해 힘을 얻었고, 본인도 더 노력하겠다고요.”
미혼인 이 과장은 요즘 일본어 공부에 빠져 있다. “은행 업무가 대표적인 서비스업이잖아요. 일본은 서비스 정신이 유명하니까 관련 서적을 원서로 읽어 고객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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