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나라당의 발걸음을 포퓰리즘이란 단어 하나로 비난하기엔 정당성과 절박함이 상당부분 있다. 4·27 재·보궐선거에서 민심의 이반을 확인한 상태에서 총선과 대선이라는 국민의 심판을 코앞에 둔 여당이 변화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한 번쯤 문제의 근본원인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보고 왼쪽으로 달려가는지 묻고 싶다. 민심 변화를 ‘소통 불능’ ‘사장 리더십의 한계’라며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리더십 실패로 보는 것은 너무 피상적인 분석이다. 보수 진영의 경제 설계도인 MB노믹스가 성장과 분배, 일자리 창출 등 모든 경제영역에서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설명이 합당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10년 만에 집권한 보수진영이 바깥세상은 물론이고 우리 자신의 변화도 인식하지 못한 채 과거의 성공 방정식만을 답습한 결과로 본다.
가장 큰 변화는 ‘대기업 투자신화의 붕괴’다. MB노믹스는 대기업이 투자를 늘리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일자리가 창출돼 우리 모두의 소득이 올라간 성공경험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런 메커니즘은 작동하지 않은 지 오래다. 대기업이 글로벌 경쟁의 압박 속에서 국내 투자만을 고집하면 순식간에 경쟁력을 잃게 된다. 대기업 스스로 이런 구조를 만든 것은 아니다. 글로벌 경제가 변한 것이다. 대기업은 여전히 우리의 대표선수다. 대기업이 망하면 그 피해는 우리 사회 전체가 떠안아야 한다. 다만 정부가 대기업을 통해 성장과 고용을 모두 해결하기 불가능한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짝사랑을 멈추지 않고 있다. 세상 변화를 모르는 정부는 대기업이 짝사랑을 받아주면 특혜를 주고, 그 반대면 협박을 하는 흘러간 춤을 추고 있다.
이제는 외국기업 및 벤처나 중소기업도 일자리를 늘리는 데 기여하도록 고용창출 그 자체에 인센티브를 줘야 하는 시대가 왔다. 선진국 대통령이나 총리가 고작 수백 명을 고용하는 외국기업의 착공식에까지 나타나 비굴할 정도로 미소를 보내는 이유를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을 늘려야만 좋은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신화도 유효기간이 끝난 믿음이다. 서비스 경제는 수요와 공급이 즉각적으로 맞아야 한다. 일자리 창출에 고용의 유연성이 필요한 이유다. 서비스 회사가 제조업처럼 서비스를 미리 생산해서 재고를 갖고 있다 성수기 때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네덜란드는 이런 변화를 받아들여 우선 국가가 개인의 실업부담을 상당부분 책임져주고 정규직의 양보를 받아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앴다.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늘어났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오직 정규직을 늘리기 위해 골몰했다. 정부 눈치를 보는 공기업과 은행에서 일부 성과가 있었을 뿐이다.
또 정부는 기득권 집단에 밀려 의료 및 교육산업 등 서비스업 선진화에도 실패했다. 4대강 사업에 보여준 돌파력의 절반만 쏟았어도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다. 다음 자신의 선거에 신경 써야 하는 정치인을 계속해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했을 때부터 서비스업 개방정책은 지지부진할 것으로 예상됐다.
정당이 민심의 변화를 수렴하는 것은 존재의 이유다. 하지만 세상 변화의 밑바닥 흐름을 보지도 못하고 무작정 돈 퍼주기의 길로 달려가는 것은 창조적인 보수가 갈 길이 아니다. 보수가 길을 잃은 채 헤매고 성장친화적인 진보가 등장한다면 민심은 상당기간 보수를 떠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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