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낙오 충격 ‘천덕꾸러기’ 전락 “새로운 무기로 승부하라”… 3D에 ‘반짝’
“그게 될까” 비관속 170명 밤 잊고 막일, 끝내 극적인 개발… 새벽이 오고 있었다
《 2010년 3월. 심란한 하루가 이어졌다. 언론에서는 온통 애플의 아이폰 얘기였다. 그나마 삼성전자는 자체 스마트폰 운영체제(OS) ‘바다’를 만들고 아이폰에 맞설 비장의 무기 ‘갤럭시S’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LG전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전략적 판단 착오로 일반 휴대전화에만 올인했기 때문이다. 그해 2월에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참석도 못했다. 보여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참담했다. 매출과 영업이익도 뚝 떨어졌다. 휴대전화 사업의 1분기(1∼3월)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19.7%, 영업이익은 88.9% 줄었다. 경영진의 능력까지 의심받기 시작했다. 》 LG전자 휴대전화(MC)사업부 직원들은 갑자기 변한 세상에 적응이 안됐다. ‘프라다폰’, ‘초콜릿폰’으로 신화를 창조했던 사업부 아니었던가. 하지만 2009년 11월 아이폰3GS가 상륙한 뒤 세상이 달라졌다. 이들은 갑자기 그룹의 ‘천덕꾸러기’가 됐다.
급하게 스마트폰 프로젝트들이 생겨났다. 개발 시간을 생각하면 아이폰4 이후를 대비해야 했다. 2010년 장사는 이미 망했다고 봐야 했다(실제로 LG전자 휴대전화 사업부는 당시 2분기(4∼6월)부터 올해 1분기까지 연속 적자다). 결국 남용 부회장이 물러나고 그해 10월 오너 최고경영자(CEO) 구본준 부회장이 ‘독한 LG’를 외치며 구원투수로 나서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 “이게 정말 되겠어?”
다시 2010년 3월. 노현우 기술전략팀 선임연구원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올해는 그렇다 쳐도 새해에는 존재감을 드러낼 뭔가가 필요했다. 기술전략팀과 상품기획팀은 연일 회의였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3차원(3D)이 뜨긴 뜰까요? TV사업부는 온통 3D 얘기던데….”
“아, 맞다. 3D! 왜 아직 휴대전화에서는 3D 생각을 아무도 안 했지? 뜰 때까지 언제 기다려요? 우리가 먼저 합시다.”
이때부터 안경 없이 입체화면을 보는 3D 스마트폰을 만들기 위한 450일간의 여정이 시작됐다. 본격적인 프로젝트팀을 만들려면 실제로 실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인지 검증해야 한다. 두세 달이면 끝날 일이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내부의 회의적인 시각과도 싸워야 했다. ‘3D로 볼 만한 콘텐츠가 있을까? 너무 빠른 것 아닌가’라는 온갖 걱정이 쏟아졌던 것이다. 사업이 잘되고 있을 때야 ‘이런 말쯤’ 하고 넘기겠지만 회사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비판적인 시각은 팀원들의 마음도 흔들어댔다.
그때마다 고참 개발자들이 나섰다. 휴대전화의 멀티미디어를 연구해 온 이남수 수석연구원은 “3D 스마트폰이야말로 멀티미디어와 궁합이 잘 맞는 특별한 모델이 될 거란 감이 온다”며 “우리가 일반 휴대전화에서도 카메라가 강했는데 3D 카메라로 또 한 번 나서 보자”고 나섰다.
○ ‘노가다’가 노하우가 되다
2010년 8월 말, 서울 금천구 가산동 LG전자 연구개발(R&D) 센터 사무실. ‘코스모폴리탄 프로젝트’ 팻말이 걸렸다. 661m²(약 200평) 규모의 방에 170여 명이 한데 모였다. 드디어 3D 스마트폰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꾸려진 것이다. 이름이 왜 ‘코스모폴리탄’일까?
“원래 프로젝트명은 의미 없이 붙여요. 코스모폴리탄이 뉴욕과 주요 도시에서 팔리는 여성잡지 이름인데, 우리도 트렌드를 앞서나가는 폰을 만들자는 얘기죠.” 이 수석연구원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름만 멋졌지 하는 일은 ‘노가다(막일)’였다. 우선 가장 역량을 쏟았던 3D 카메라. 사람이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이유는 왼쪽과 오른쪽 눈이 서로 다른 영상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노 선임연구원은 우리 눈처럼 카메라 렌즈 두 개의 거리를 띄우기로 했다. 의학 논문부터 뒤졌다. “사람의 양쪽 눈 사이 거리가 6.5cm라고? 오케이.” 카메라 렌즈 두 개 사이를 6.5cm로 띄어놓고 3D 영상을 찍어봤다. 엉망이었다. 사람의 눈동자는 고정돼 있지 않으니 최적의 거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 밤잠을 설치다 기구(소재 및 재료)를 담당하는 강재혁 책임연구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레일 하나 만들어줘요.”
강 책임연구원이 정성껏 만들어 준 레일 위에서 실험을 시작했다. 원점에 카메라를 두고 사진을 찍고, 원점에서 5cm 떨어진 지점으로 이동시켜 또 한 장 찍고. mm 단위로 거리를 바꿔가며 사진 두 장을 합성해 봤다. 그렇게 해서 찾은 수치가 2.4cm다. 시중에 나온 3D 카메라를 모조리 해부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안경 없이 보는 3D 화면은 LG디스플레이와 같이 조율했다. 액정표시장치(LCD)에 얇은 판막이를 붙여 화면의 점(픽셀)에 미세한 경계선을 나눴다. 이 나눠진 점이 양쪽 눈에 각각 들어오도록 했다. 정동수 수석연구원은 “프로젝트 팀원 전부가 실험도구를 직접 만들어가며 ‘노가다’를 했다”며 “놀라운 것은 ‘노가다’를 하다 보니 결국 우리의 노하우가 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스페인의 반전 드라마
주말도 없이 이어지는 야근으로 지친 사람도 늘어갔다. 그러자 리더인 이현준 상무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개발전선에 뛰어들었다. 개발팀은 절박했다. 스마트폰 때문에 회사 전체가 적자로 돌아섰고, CEO와 휴대전화 사업부 본부장도 바뀐 상황에서 반드시 성공을 이끌어내야 했다.
1차 소비자인 통신사들의 반응은 신통찮았다. 12월, 한국시장을 총괄하는 김영희 책임연구원이 통신사들과 처음 만난 자리. 그들이 대뜸 한 첫 질문은 이랬다. “이런 거 왜 만드세요?” 힘이 쫙 빠졌다. 김 책임연구원은 할 말을 잃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게다가 2011년 2월 14일에 열리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까지 3D 기능을 제대로 완성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다. 이번이 세계에 대놓고 ‘나 죽지 않았다’고 외칠 기회인데, 놓칠 수 없었다. 팀원들이 힘들어하는 걸 지켜보던 정 수석연구원의 마음도 무거웠다. 우리는 한 배라고, 이를 악물어보자고 토닥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출국을 하루 앞둔 2월 11일 밤, 거짓말 같은 반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170명 전원이 일제히 환호했다. 드디어 손떨림 방지나 고화질(HD) 재현 등 제대로 된 3D 카메라 기능이 완성된 것이다. 스페인으로 날아갈 용사들은 가산동 R&D센터에서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노 선임연구원은 10시간 동안 전시장에 서 있었다. 눈앞의 광경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갔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몰려드는 관람객들에게 제품 설명만 했는데, 전혀 피곤하질 않았다. 그동안의 고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진짜 ‘뽕’ 맞은 것 같더라고요. 힘이 넘쳐서….”
한국시장 담당 김 책임연구원은 통신사의 말 한마디에 전율을 느꼈다. “정말 재미있네요.” 각국 통신사들의 질문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멀티미디어 담당 이 수석연구원도 신이 났다. 삼성전자나 소니 같은 다른 회사 TV와 호환이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부장급인데도 거리로 나섰다. 모든 TV가 다 모여 있는 하이마트에서 ‘친절한 직원’을 찾아 사정을 설명했다. 매장에 앉아 일일이 TV와 스마트폰을 연결해 영상과 게임이 돌아가는지 확인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종일 게임만 해서 게임의 달인이 됐다.
격려의 3종 세트도 날아왔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예고 없이 보내는 ‘CEO 피자’. 박종석 MC사업본부장의 ‘힘내 치킨’, 정옥현 MC연구소장의 ‘응원의 도넛’까지…. 세 개의 격려 선물을 받은 팀은 회사 내에서도 드물었다.
○ “여보야가 내가 만든 폰 중에 제일 낫대”
코스모폴리탄 프로젝트 팀이 만든 스마트폰은 ‘옵티머스 3D’라는 이름을 달고 6월 말 스페인 영국 등 유럽 일부 지역과 7월 한국 시장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이달 말부터는 미국에도 들어가 모두 60여 개국, 100여 개 사업자에게 팔기로 했다. 18일 현재까지 약 20만 대를 팔았다.
하지만 대만 스마트폰업체 HTC도 3D 스마트폰을 북미 시장에 내놓았다. 찍고 보고 유튜브, TV 등과 공유하는 3D 스마트폰은 LG전자가 세계 최초지만 벌써 이 시장의 경쟁도 시작됐다.
그래도 개발자들은 자신 있다는 반응이다. 세계 최초의 3D 스마트폰을 만들었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국내에서 정식으로 팔리기 시작한 날인 15일, 인터뷰를 위해 프로젝트의 핵심 멤버 10명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일부는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다. 누군가가 김현중 수석연구원에게 “그동안 야근 많이 했는데, 가족들은 이제 괜찮아?”라고 묻자 그는 “우리 ‘여보야’가 내가 그동안 만든 폰 중에서 제일 낫다는데?”라며 웃었다.
이 제품을 만들기 위해 숱한 밤을 지새운 강 책임연구원은 “이번에야말로 우리 자존심을 되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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