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기침체와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지면서 그동안 증시를 주도했던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의 기세가 주춤하다. 그 대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몇 년째 각광받지 못했던 가치주에 대한 관심이 새로 부각되고 있다. 내재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됐던 일부 기업들은 최근 부쩍 상승세를 보이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가치주 펀드들도 최근 1주일∼1개월 수익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 성장주 바통 가치주가 넘겨받나
한동안 현대차 기아차 등 자동차주와 부품주, 중화학주 등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치솟았다. 최근에는 LG패션 한섬 롯데삼강 롯데칠성 남양유업 보험주들이 상승 물결에 올라탔다. 이들 종목은 20일에도 사상 최고치 또는 52주 신고가를 경신하는 등 최근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 종목들의 공통점은 바로 수익성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된, 이른바 가치주들이다. 연간 10% 내외로 이익을 꾸준히 내는 데 비해서 주가수익비율(PER)은 6∼7배 근처를 맴돌았던 종목들이다. PER가 코스피 평균인 10배 수준까지는 가야 제대로 평가를 받는다고 할 만하다는 분석이다.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금융위기 이후 기업의 이익이 눈부시게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성장성이 두드러진 종목들이 각광받았다”며 “하지만 매년 기업의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어 수익성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된 가치주 종목들이 서서히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500대 상장기업의 전년 대비 영업이익은 2009년 사상 최대인 60% 늘었지만 지난해는 40% 증가하는 데 그쳤다. 올해는 27% 증가할 것이라는 증권사들의 컨센서스가 있지만 1, 2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낮아 20% 증가에 머물 것으로 보는 곳도 있다. 내년에는 10%대에 불과할 것이라는 게 현재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이익 증가율이 점점 줄어들면서 이제는 성장주가 부각되는 시기가 지나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 최근 중소형주가 몰려있는 코스닥지수가 520대를 돌파하며 상승세를 타는 것도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 가치주 펀드 각광, 지속될지는 불투명
최근 가치주 펀드의 성적표는 단연 돋보인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신영마라톤, 한국밸류, KB밸류 등 주요 가치주 펀드의 1개월 수익률이 국내 주식형펀드 평균 수익률을 웃돌았다. KB밸류포커스증권자투자신탁(주식)클래스C의 1개월 수익률은 7.48%로 국내 주식형펀드 평균 수익률보다 3%포인트 이상 높았다. 한국밸류10년투자증권투자신탁1(주식)은 1개월 수익률이 5.12%였고 신영마라톤증권투자신탁(주식)A는 4.85%였다. 국내 일반 주식형펀드의 1개월 평균 수익률은 4.14%.
투자자문업계도 가치주를 주로 편입한 곳이 웃고 있다. ‘차·화·정’ 바람을 일으켰던 일부 투자자문사보다 가치주를 앞세운 곳의 성적이 앞서면서 증권사, 은행에서도 이런 자문사를 자문형랩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자산운용본부장은 “국내 유동성이 좋기 때문에 앞으로 6개월 이상은 가치주가 주목받을 수 있다”며 “이익이나 주당순이익이 높은 종목, 배당순이익이 높은 종목을 잘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외 악재가 가라앉으면 대형주가 다시 관심을 받을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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