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캘퍼 문제, 法보다 시장보호 차원서 봐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22일 03시 00분


■ ‘35년 증권맨’ 황건호 금융투자협회장

황건호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은 20일 “금융시장은 감독기관과 민간이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해 발전시켜야 하는, 살아있는 생물 같은 존재”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DB
황건호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은 20일 “금융시장은 감독기관과 민간이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해 발전시켜야 하는, 살아있는 생물 같은 존재”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DB
“주식워런트증권(ELW)을 거래하는 초단타매매자(스캘퍼)에게 전용선을 설치해 준 것을 불법이라고 하면, 마찬가지로 전용선을 쓰는 국민연금이나 기관투자가들도 법을 위반한 것 아닙니까. 연기금이나 기관투자가들이 모두 불법을 저질렀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황건호 한국금융투자협회 회장(60)이 최근 검찰이 ELW 시장에서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12개 증권사 전현직 사장을 기소한 것과 관련해 20일 굳게 닫았던 말문을 열었다. 증권업에 몸담은 세월이 35년에 이르는 증권업계의 맏형이자 국제증권업협회협의회(ICSA) 회장으로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ELW 거래 문제는 증권사가 스캘퍼에게 특혜를 줬다고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촉발됐다. 검찰은 전용선으로 불리는 ‘직접전용주문(DMA·Direct Market Access)’ 시스템을 특혜의 핵심으로 지목하고 있다. 증권사들이 주문 처리에 걸리는 시간을 줄여주려고 단골 고객인 스캘퍼들에게 DMA 시스템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주문 처리 속도가 수익 확보의 결정적 요소이므로 이 시스템을 제공했다면 큰 특혜라고 판단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속도가 빠르다고 늘 수익을 얻는 것이 아니며 스캘퍼는 다른 스캘퍼나 증권사들과 경쟁하므로 일반투자자 피해는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황 회장은 “금융시장의 시스템과 불법행위는 서로 다른 영역”이라며 “불법행위는 당연히 엄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시스템 자체를 법으로 판단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시장을 살아 있는 생물에 비유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시스템과 상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시장은 재단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를 갖고 지켜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래야 세계 금융시장에서 국가나 거래소들이 치열하게 벌이는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위법 행위가 우려되면 먼저 감독기관이 감사를 하고 사법당국은 그 다음 단계에 개입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 그는 “시장을 연 거래소가 있고 감독기관도 있지 않느냐”며 “이런 곳에서 먼저 금융투자업계와 활발히 의견과 정보를 나누면 법까지 가지 않고 문제점을 미리 막고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ELW 사건과 관련해 법조계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관계자들을 만나 시장 시스템을 설명하고 의견도 전달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는 해외사례 등 관련 정보도 모으고 있다. 그는 “초단타매매자 등 거래가 잦은 투자자 문제는 미국 같은 선진 시장에서도 많이 제기되지만 곧바로 법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며 “시장 시스템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감독당국이 다루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날 오후에도 사무실에서 제법 두툼한 영문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날 저녁 ICSA 회장으로서 각국의 증권업협회장들과 화상회의를 주재한다고 했다. 그는 ICSA 회장으로서 각국의 협의회나 감독기관으로부터 의견이나 정보요청을 많이 받는다. 이러한 활동 자체가 시장과 감독당국의 교류라는 설명이다. 화상회의 때 한국 ELW 문제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눌 것이냐는 질문에 황 회장은 “부끄러워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반성할 것은 반성하겠다”고 했다. 새로운 상품이나 시스템이 나올 때마다 이로 인해 일반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거나 다른 문제점은 없는지 더 세심하게 살피겠다는 것. 황 회장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법이나 감독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며 “시장 참여자들의 자각이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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