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인문학이 경영자에게 주는 교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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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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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배우는 통찰, 기업 문제해결의 ‘징검다리’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에서 항복했지/나도 거의 같은 식으로 사랑의 운명을 만났다네/책장에 진열된 역사책은 언제나 반복되고 있지.’ 스웨덴의 전설적인 팝 그룹 아바(ABBA)를 세계적 스타로 만들어준 노래 ‘워털루’의 한 구절이다. 나폴레옹이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졌던 것처럼 사랑에 항복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을 ‘역사는 반복된다’는 교훈과 연관지어 유쾌하게 풀어냈다.》
역사는 사랑뿐 아니라 기업 경영에도 반복된다. 조직의 최고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실수 없이 알려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다. 경영학에서는 사례 연구로 이런 훈련을 시킨다. 역사와 문학, 철학 등 인문학은 케이스 스터디의 확대판이다. 두산그룹 오너가의 4세 경영자인 박진원 두산산업차량 대표이사(부사장)는 DBR(동아비즈니스리뷰) 기고문을 통해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인문학이 경영자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시했다. DBR와 플라톤아카데미가 공동 기획한 인문학 스페셜 리포트에 실린 박 대표의 기고문을 요약한다. 박 대표 글의 전문은 DBR 86호(2011년 8월 1일자)에서 만나 볼 수 있다.

○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교훈은 있다

기업 경영자는 한마디로 의사결정권자다. 결정을 내리고 판단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 판단이 기업의 생사를 좌우하기 때문에 경영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역사 속 인물들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좋은 참고자료를 제공한다. 병자호란(1636∼1637) 때 인조가 내렸던 잘못된 결정이나 메디치가의 부흥을 가져온 코시모 일 베키오(1389∼1464)의 결정적 의사결정은 21세기 경영자에게도 여전히 생생한 교훈을 준다.

병자호란이 발발했을 때 인조는 청나라 군대의 규모나 남하 속도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해 전략적으로 후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그 결과 삼전도의 굴욕(1637)이라는 수치스러운 역사를 만들었다. 이런 지도자의 판단 실수가 기업에서 반복되면 한순간에 조직이 몰락할 수 있다.

실제로 필자는 아찔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는 유럽발 경제위기 이전에 다른 경쟁업체보다 먼저 완성품의 재고를 줄였다. 경제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예측했다기보다는 많은 재고를 가지고 밀어내기 식 경쟁을 하는 게 한계 상황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수출하는 업체가 현지 재고를 줄이면 당장 고객들이 제품을 제때 받기 어려워 경쟁에서 불리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했다. 경쟁사를 분석해 보니 우리와 비슷한 손익구조를 가지고 있어 언제까지 출혈 영업을 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모두 폭탄 돌리기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지만 서로 눈치만 봤고 폭탄은 점점 더 규모를 키워갔다.

우리는 먼저 발을 빼기로 결정했다. 당장의 이익은 희생해야 하지만 더 큰 폭탄이 터졌을 때 당해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후퇴를 하려면 신속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공장 라인을 재빨리 통폐합하고 장기 재고에 대해서는 한국식 떨이인 ‘폭탄 세일’까지 해가며 몸집을 줄였다. 어느 정도 재고를 털어냈을 때 경제위기가 닥쳤다. 재고를 많이 갖고 있던 경쟁사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회사의 당시 형편을 감안했을 때 만약 우리가 조금 더 눈치를 봤다면 큰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인조는 청나라 군대의 침공이라는 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전쟁이 벌어진 후에도 우왕좌왕하다가 피란을 가지 못해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다. 그때 강화도, 아니 더 정확히는 남쪽으로 말을 타고 빨리 피란했다면 아마 조선의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교훈은 있다. 후퇴하려고 마음먹으면 살아날 수 있을 정도로 신속하게, 또 정확하게 움직여야 한다.

○ 폐위된 교황에게 거액을 대출해 준 메디치家

코시모 일 베키오는 몰락한 교황 요한 23세를 도와줌으로써 가장 획득하기 어려운 신용이란 자산을 단기간에 확보했다. 이 역사 속 사례는 과감한 투자가 가져다주는 황홀한 결실을 잘 보여준다. 메디치은행의 고객이었던 요한 23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교황 자리에서 강제 폐위됐다. 이 과정에서 메디치은행은 폐위당한 교황에게 막대한 보석금을 대출해줬다.

모든 재산과 권리를 박탈당한 폐위된 교황에게 거액을 대출한다는 것은 은행가로서는 절대로 삼가야 할 일이다.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도 회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메디치가가 고객에 대한 신의를 절대적으로 지킨다는 것을 확인한 교황과 유럽 각국의 국왕들은 앞다퉈 고객이 됐다.

요한 23세에게 대출을 결정할 때 코시모가 당장은 부담되더라도 장기적으로 은행의 신용도를 높여 투자금 이상의 회수가 가능하다는 고도의 사업적 판단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사실은 ‘은행 사업의 핵심은 결국 신용’이라는 단순하지만 절대적 진리를 코시모가 실천했다는 점이다.

사업상의 신용이란 거창한 게 아니다. 간단히 말해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상거래에서 약속을 지키는 것도 일상생활에서 약속을 지키듯이 하면 된다. 개인적 약속을 지키다 보면 그것이 쌓여 비즈니스에서도 신용을 확보할 수 있다.

○ 인문학은 케이스 스터디의 확대판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경영자들이 시험을 보기 위해 인문학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물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그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기에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역사에서 어떤 통찰력을 얻는가의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역사 공부를 하면서 당시의 상황과 내가 내렸던 의사결정들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또 철학적인 메시지가 내게, 혹은 조직원에게 어떻게 전달될까를 고민하다 보면 적절한 소통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박진원 두산산업차량 부사장
박진원 두산산업차량 부사장
인문학적 케이스 스터디는 경영학과는 달리 바로 해결 방법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경영학 서적이 대개 기업의 공통적 고민에 대한 ‘모범 답안’을 제시해 왔다면, 인문학 서적은 내가 가진 목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과 방법’을 알려준다. 따라서 인문학을 공부하면 현실 적응력이 높아지고 문제 해결 역량도 커진다. 이런 능력을 얻어가면서 경영자는 통찰력을 키워가고 질 높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인문학은 어렵지도, 멀리 있지도 않다. 바로 내 곁에 있다.

박진원 두산산업차량 부사장  
정리=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저널 동아비즈니스리뷰(DBR) 86호 (2011년 8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구독 문의 02-2020-0570

벤치마킹, 그냥 따라라?… 경영사례 베스트40

▼DBR Case Essentials


‘비수기에도 고객을 유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상권의 범위가 좁고 입지마저 열악한 영업점은 어떻게 생존해야 할까?’ ‘쟁쟁한 프리미엄 브랜드가 즐비한 시장에서 시장 개척자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가?’ ‘벤치마킹,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걸까?’
여름 휴가철을 맞아 독자들을 위해 DBR가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2008년 1월 첫 호 발간 후 3년 반 동안 DBR에 실린 수많은 경영 사례 중 40개를 엄선했다. 마케팅, 전략, 인사조직, 운영관리 등 각 분야별로 기업 실무자들이 부닥치는 고민과 그에 대한 솔루션을 Q&A 형식으로 요약했다. 역경과 고난을 극복한 기업들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새로운 영감과 통찰을 얻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자본주의 위기 해결방안 ‘공유가치 창출’

▼ Harvard Business Review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곤경에 처한 자본주의에 돌파구를 마련해줄 새로운 해결책으로 ‘공유 가치 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공유 가치는 사회 발전과 기업의 경제적 이익 창출이 양립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에 대한 신뢰가 추락함에 따라 경제 발전과 성장을 방해하는 정책들이 양산되는 현 시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글이다. 이미 창출한 가치를 재분배하는 데 주력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수준을 넘어 CSV는 경제사회적 가치 총량의 확대를 주장한다. 공유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세 가지 구체적 대안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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