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언젠가 지는 날이 있듯이 시장에도 영원한 1등은 없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8일 한국의 시가총액 기준 100대 기업과 미국의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의 최근 30년간 부침(浮沈)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73개, 미국은 81개 기업이 각각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고 그 빈자리를 새로운 기업들이 채운 것으로 나타났다.
○ 전통 제조업 지고 금융·IT기업 뜨고
국내 100대 기업에서 탈락한 곳은 대부분 수출비중이 낮은 기업들이었다. 1980, 90년에 100대 기업 자리를 유지한 곳의 수출비중은 28.4%, 새로 진입한 기업은 25.1%였던 반면 탈락한 기업은 20.9%에 그쳤다. 수출비중이 낮아 내수시장 의존도가 높은 기업은 국내 경기가 가라앉거나 정부정책에 따라 시장환경이 급변하면 상대적으로 큰 위험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상식이 통계로 확인된 셈이다.
우리나라와 미국 모두 100위권에서 탈락한 기업 중에는 전통 제조업 부문의 강자가 많았다. 국내 기업 중 1980년 당시 10위권에 들었던 기업 가운데 대한전선 쌍용양회 한일시멘트 한국유리 등 네 곳이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는데 이들은 모두 제조업체였다. 미국에서도 1980년 100대 기업 중 US스틸(14위) 크라이슬러(17위) 코닥(30위) 모토로라(37위) 등 유명 제조업체들이 탈락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이 떠난 자리는 양국 모두 금융 정보기술(IT)처럼 시장규모가 커진 분야의 기업들이 차지했다. LG디스플레이 NHN 미래에셋증권(이상 한국), AIG 아마존(이상 미국) 등이 대표적이다. 또 우리나라의 OCI(태양광사업) 락앤락(식품용기 제조), 미국의 애플(스마트폰, 태블릿PC)처럼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 기업들도 100위권에 명함을 내밀었다.
○ 무리한 사업확장이 몰락 원인
대한상의는 100대 기업에서 탈락한 한미 양국 기업들의 실패 원인으로 먼저 ‘성공에 대한 자만’을 꼽았다. 과거의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닌데도 경영자가 자만에 빠져 주변의 경고를 무시해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세계적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는 리스크 관리를 담당했던 임원진이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의 문제점을 경영진에 수차례 지적했지만 경영진이 이를 무시했다가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제물이 됐다.
‘변화를 거부하고 현실 안주’를 택한 기업 역시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코닥은 1990년대 중반까지도 영상사업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업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보급되고 관련 시장이 커지는데도 코닥의 경영진은 이미 아날로그 사업 부문에서 충분한 수익을 내고 있다는 점을 들어 새로운 시장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했다. 결국 코닥은 경영진의 잘못된 선택으로 대량 감원과 공장 폐쇄라는 아픔을 겪었다.
많은 기업이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기 위해 신사업을 찾지만 이 역시 뚜렷한 비전 없이 ‘무리한 사업다각화’로 흐를 경우 몰락의 원인이 된다고 대한상의는 지적했다. 1980년 당시 국내 100대 기업 중 79위에 이름을 올렸던 진로는 소주시장 부동의 1위 업체였다. 그러나 진로는 명확한 목표 없이 성장에만 집착해 유통 금융 레저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다 부도를 맞았고 알짜 사업마저 모두 매각하는 불운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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