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부터 제주에서 하계포럼을 진행하고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8일 현지에서 열기로 했던 ‘전경련 회장배 친선골프대회’를 당일 부랴부랴 취소했습니다.
전경련은 이날 회원사 최고경영자(CEO)와 임원 등을 모아 엘리시안, 스카이힐, 타미우스, 레이크힐스 등 컨트리클럽 네 곳에서 골프대회를 열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 중부를 강타한 집중호우로 국민이 시름에 잠긴 판에 기업인들이 이런 행사를 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오자 돌연 없었던 걸로 한 것입니다. 전경련은 골프대회 참가자들에게 회장이 시상하려던 계획도 백지화하고, 미리 준비한 대회 플래카드도 모두 철거했습니다.
하지만 ‘대회’는 취소했지만 300여 명이 85개 팀으로 나뉘어 ‘골프’는 쳤습니다. 이미 오래전 예약했던 터라 대회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친목 라운드’를 했다는 설명입니다. 골프를 치지 않는 일부 참가자는 요트를 타기도 했습니다.
기자는 이 같은 해프닝을 보면서 ‘몸 사리고 눈치 보는 전경련’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전날 개막식에서 보인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신중한 모습’도 다시 떠올랐습니다. 계속되는 정치권과의 대립 관계 때문에 그의 개회사에 비상한 관심이 쏠렸지만 허 회장은 하계포럼 개회사에서 ‘스마트 경영’만 거론하며 극도로 무미건조한 연설로 일관했습니다. 기자단의 거듭된 면담 요청에도 허 회장은 응하지 않았습니다.
한때 “반값 등록금은 즉흥적 정책이다”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정책결정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비판했던 허 회장이 왜 다시 웅크리게 됐을까요.
이에 대해 전경련 관계자는 “정치권의 경제단체장 공청회 참석 요구 등으로 민감한 시기인 만큼 재계 현안에 대한 언급은 일부러 피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하계포럼에서 전경련이 입었던 설화(舌禍)를 얘기하며 “지금은 조심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지난해 개회사에서 “세종시 같은 국가 중대사업이 당리당략에 밀려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고, 4대강 사업도 반대세력의 여론몰이로 혼선을 빚고 있다”며 정치권을 강도 높게 비판해 시달린 적이 있습니다.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이 할 말이 있으면 당당하게 하고, 행사를 하려면 떳떳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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