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딜레마에 빠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1일 03시 00분


지식경제부가 10일 전기차 개발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전 세계적으로 판매 중인 닛산의 리프(LEAF)보다 성능이 뛰어난 준중형급 전기차를 현대차 컨소시엄이 2014년 초부터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정부지원금 700억 원을 포함해 총 1000억 원이 투입된다.

지경부는 지난해 9월 국산 고속 전기차인 ‘블루 온’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배터리 충전 방식과 2020년까지 충전기 220만 대를 설치할 로드맵을 2011년 상반기에 확정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날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이에 대해 주영준 지경부 자동차조선 과장은 “검토해 보니 배터리 충전방식은 자동차업계에서 결정할 비즈니스모델이고, 충전인프라 보급은 내년도 예산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석유값의 장기적인 상승세와 탄소배출을 줄이라는 국제적 압력으로 전기차의 개발이 불가피해지면서 정부가 ‘전기차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빠른 시간에 미국 일본 등의 전기차 산업을 따라잡아야겠다는 의지에 비해 인프라와 관련 부처와의 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고질적인 딜레마는 자동차업계와 기존 정유사들이 서로 전기차와 충전시설을 먼저 만들라는 이른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치킨에그(chicken-egg)’ 신경전. 홍영식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기충전소는 10년 이상을 운영해야 약 7%의 이익을 얻을 수 있어 민간 사업자가 운영하기에는 수익성이 낮다”고 분석했다. 이에 정부는 초기에 전력사업자인 한국전력공사가 충전소를 보급하면 된다고 본다. 그러나 원가 이하의 전력 판매로 3년간 6조 원 이상의 적자를 보고 있는 한전은 충전기 보급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게 부담스럽다는 표정이다. 정부가 목표로 한 220만 개의 충전기 중 절반가량은 개인용 충전기로 전기차 소유주가 가정에서 충전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 주차장을 갖춘 미국식 주택과 달리 아파트가 대다수인 국내 환경에서 개인이 하루 8시간가량을 직접 충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충전기 인프라를 탓하면서 전기차 개발에 미온적인 자동차업계는 정부의 전기차 정책에 반신반의한다. 정부 세수의 15%에 달하는 유류세 감소 등 현실적인 문제를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전기차 보급에 따른 유류세 감소에 대해 지경부 관계자는 “해당 부처(기획재정부)가 판단할 일”이라고만 말했다. 박상원 유진증권 애널리스트는 “2만 개 이상의 부품 조립과 엔진 개발에 핵심 역량을 갖고 있는 기존의 자동차회사들은 전기차가 보급되면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어 개발에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전기차 보급으로 정보기술(IT) 분야의 다양한 기능이 전기차에 내장되면 새로운 산업이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기존의 가솔린 자동차에 부품을 공급하던 중소형 업체는 공급처를 잃을 수밖에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일단 전기차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전기차 확산을 위한 걸림돌과 부작용도 적지 않아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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