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가야 멀리 간다/대기업-中企 동반성장]<6>납품단가연동제 도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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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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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가격 올라 제품값 올리면 대기업선 거래처 바꿔”

■ 이런 현실

17일 경기 평택시 삼기오토모티브 본사에서 김상현 회장(가운데)이 직원들과 함께 이 회사가 만드는 자동차 부품인 오토미션에 들어가는 밸브보디를 살펴보고 있다. 김 회장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중소기업들이 만든 기업 간의 끈끈한 네트워크 경쟁력이 바로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17일 경기 평택시 삼기오토모티브 본사에서 김상현 회장(가운데)이 직원들과 함께 이 회사가 만드는 자동차 부품인 오토미션에 들어가는 밸브보디를 살펴보고 있다. 김 회장은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중소기업들이 만든 기업 간의 끈끈한 네트워크 경쟁력이 바로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납품단가연동제의 도입과 관련해 중소기업들은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면 제품 가격 역시 오르는 게 당연한 순서 아니냐”며 “이대로만 해 달라는 게 우리의 요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 안산에서 금속 관련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B 씨는 “3개월, 6개월 단위의 원자재 가격 인상분 반영은 바라지도 않고 1년 단위로라도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고려해 납품단가를 결정해줬으면 좋겠다”며 “엄밀히 말하면 생산 설비의 감가상각비도 납품가격에 포함되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 사장들은 ‘감가상각비는 반영 안 해줘도 좋으니 원자재 가격 인상분만이라도 반영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도권의 한 중소기업 대표 C 씨는 “원자재 가격이 올라 납품단가를 올리면 당장 대기업에서 납품단가를 올리지 않는 업체로 거래처를 바꿔버린다”며 “납품이 끊겨 공장 문을 닫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예전 가격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특수강의 경우 지난해와 비교해 kg당 8% 정도 가격이 올랐는데, 외국 대기업은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반영해 납품가격을 주지만 국내 대기업은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납품단가연동제는 중소기업들의 해묵은 소원이다.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은 2008년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납품가격에 반영해줄 것을 요구하며 납품 중단이라는 초강경 카드를 꺼내들었다. 제조업에 필수인 주물 생산이 중단되자 대기업들은 부랴부랴 납품단가 현실화를 약속했고, 주물조합은 납품을 재개했다. 하지만 그 뒤로 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

주물조합 서병문 이사장은 “당초 약속과 달리 정기적으로 납품단가연동제를 실시하는 대기업은 극히 드물다”며 “차선책으로 조합에 납품단가 조정 협상권을 달라고 했지만 이마저도 신청권으로 격하됐다”고 지적했다. 납품단가 조정 협상권은 개별 중소기업을 대신해 협동조합이 대기업과 납품단가 인상에 대해 협상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하지만 신청권은 대기업이 중소기업 신청을 채택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다. 서 이사장은 “앞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의 불안정성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납품단가연동제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대안- 현대차, 3개월마다 알루미늄 값 조정
삼기오토모티브, 신규투자→품질개선

2007년 미국 GM의 1차 협력업체인 미국 D사가 삼기오토모티브에 연락을 해왔다. 경기 평택에 본사를 둔 삼기오토모티브는 알루미늄 고압주조를 통해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현대자동차그룹의 1차 협력업체다. D사는 “원가 경쟁력이 있으니 우리와 거래하자”며 연 1000만 달러짜리 거래를 제안해 왔다. 삼기오토모티브에는 해외 진출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진행은 순조로웠다. D사는 이름 있는 부품 업체였고 거래처 다변화는 삼기오토모티브에도 필요했다. 그러나 정식으로 사인하기 직전에 거래는 없던 것이 돼 버렸다. D사가 알루미늄 부품 가격을 원가에 연동해 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알루미늄이 생산원가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삼기오토모티브에 원가 연동과 알루미늄 가격 안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삼기오토모티브는 6개월에 한 번이라도 원가 조정을 해달라고 제안했지만 D사가 ‘전례가 없다’며 거절하는 바람에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다.

17일 만난 삼기오토모티브 김상현 회장은 “3개월마다 알루미늄 가격을 시세에 맞게 조정해주는 현대차그룹이 있어서 미국 D사와의 거래를 거절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삼기오토모티브는 1983년부터 현대차그룹과 거래를 해오고 있다.

○ 외국에 없는 새로운 시스템

10년 전만 해도 알루미늄이나 구리 등 철에 비해 자동차에 비교적 소량이 들어가는 비철금속은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라 납품단가를 조정해 주는 대상이 아니었다. 차에 들어가는 2만5000∼3만 개에 이르는 부품에 신경을 써야 하는 자동차 업체들은 알루미늄의 원가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알루미늄 관련 중소 부품업체들은 알루미늄 시세와 납품단가의 연동에 기업의 존폐가 달려 있다.

협력업체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현대차그룹은 2003년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다. 3개월에 한 번씩 국내 메이저 합금 업체들로부터 알루미늄 가격을 입찰 받아 현대차그룹은 물론이고 모든 협력업체들이 가장 낮은 금액에 알루미늄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협력업체들에는 변동성을 줄이고 원가 안정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알루미늄 가격의 시장 왜곡까지 막는 ‘일석삼조’의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를 합쳐 1년에 약 4000억 원어치의 알루미늄을 구매하는 현대차그룹은 알루미늄 업계의 ‘큰손’이어서 현대차가 정한 가격은 경쟁사들도 참고를 할 정도다. 삼기오토모티브 정원영 이사는 “대부분의 입찰은 조달청 가격을 참고로 하지만 알루미늄만큼은 현대차의 가격이 시장을 지배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2003년부터 6개월에 한 번 입찰하던 것을 2007년부터는 3개월에 한 번으로 바꿨고 입찰 때는 런던 금속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알루미늄의 국제 거래 시세도 참고한다. 김 회장은 “외국계 업체들은 알루미늄 관련 부품은 한번 가격이 결정되면 차량이 단종될 때까지 원가에 맞게 가격을 조정해주지 않아 계약을 할 때마다 원가 연동이 논쟁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 예측 가능한 경영

1999년 삼기오토모티브에 구리로 만들어진 부품을 대는 한 2차 협력업체가 공급을 끊어버리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구리 가격은 오르는데 납품단가는 그대로여서 더는 생산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삼기오토모티브는 구리 부품을 받지 못하면 당장 현대차와 기아차에 물량을 대지 못해 거래처가 끊길 위험에 처했다. 급한 마음에 우선 구리 시세에 맞게 2차 협력업체에 가격을 쳐준 뒤 현대차그룹에 가격 자료를 보냈다. 구리 부품에 대한 가격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함께였다. 현대차로부터 결제를 받기까지는 반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요즘에는 원자재 가격에 대한 걱정이 없다. 철은 물론이고 고무, 플라스틱, 비철금속 모두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3개월에 한 번씩 시세에 따라 납품단가 조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원자재의 가격변동이 심해진 상황에서 이런 안정적인 가격 정책은 예측 가능한 경영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삼기오토모티브 경영진은 이런 현대차의 변화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인식 변화와 움직임을 같이한다고 설명했다. 2005년부터 정 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업체가 되기 위해서는 협력업체가 생산하는 부품의 품질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동차 부품의 70%는 협력업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오너의 의지가 동반성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주는 예다.

삼기오토모티브는 현대차가 경영 리스크를 크게 덜어준 덕택에 지난해와 올해 생산시설 등에 모두 500억 원을 투자했다. 지난해 매출액이 797억 원인 기업치고는 큰 투자다. 김 회장은 “기업 하는 사람은 기업의 연속성과 성장성만 본다”며 “현대차의 구매 시스템과 무섭게 성장하는 저력을 보면 기업에 가장 중요한 연속성과 성장성이 보장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 상생위원회 평가 “中企協에 납품단가 조정 협상권을” ▼


“납품받는 대기업이 극도로 어려운 상황이라면 모를까, 요즘처럼 경영성과가 좋을 때 납품단가연동제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건 너무 불합리하다.”

동아일보와 중소기업중앙회가 구성한 ‘대-중소기업 상생위원회’ 위원인 송창석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사진)는 이렇게 잘라 말했다. 그는 “납품단가연동제는 중소기업에 추가 이익을 주자는 것이 아니라, 생존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만들어주자는 것”이라며 “‘경쟁이 심해 가격을 낮게 유지해야 된다’는 일부 대기업의 주장은 너무나 궁색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대기업들은 원자재 가격 인상을 빌미로 제품 가격을 인상하면서, 정작 협력업체에서 납품받는 제품에 대해서는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반영해주지 않고 있다. 송 교수는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 가격도 오르는데, 지금까지 이런 흐름에서 중소기업만 소외돼 왔다”며 “이 같은 불합리함을 이제는 바로잡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납품단가 조정 협상권과 관련해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대기업과 협상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현실적으로 납품단가 인상 요청을 개별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하기 힘든 구조”라며 “납품단가 협상을 전담할 조직이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 개별 협동조합이 그 역할을 맡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팀장
김상수 차장 ssoo@donga.com  

▽팀원
김선우 정효진 유덕영 김상훈  
김현수 김상운 한상준 장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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