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를 떠나며 CEO님께…” 연구원 메일 화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9일 12시 47분


한 퇴직자 "LG전자 이것만은 꼭 고쳐달라"고 고언


"회사에서 연구원들을 주인이라고 대해주지 않는다", "아이디어를 내놔도 투자수익률부터 먼저 따진다", "삼성이 어떻게 한다더라 하면 토론 없이 의사결정이 난다"

LG전자의 선임 연구원이 회사를 떠나며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에게 보낸 이메일이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입으로는 혁신(innovation)을 외치고 있지만 구시대적인 조직문화을 안고 있는 거대 기업에 대한 통렬한 지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

때문에 누리꾼들은 LG전자 뿐 아니라 최근 소프트 경쟁력 부족으로 전 세계 정보기술(IT) 트렌드에서 뒤쳐지고 있는 국내 대기업들이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5년 간 LG전자 CTO(최고기술책임자) 소속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다 지난 4월 카카오톡으로 이직한 최 모씨는 지난 16일 자신의 블로그(http://ppassa.wordpress.com)에 퇴사 당시 CEO인 구본준 부회장에게 보냈던 이메일을 게재했다.

그는 LG전자의 발전을 위해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을 건의했고 LG전자가 방향을 바로 잡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메일 공개 이유를 밝혔다.

그는 가장 먼저 LG전자가 이노베이션을 하는 회사가 아니라 이노베이션을 하겠다고 '주장'만 하는 회사라고 지적했다. 이노베이션은 위험감수(risk-taking)가 가능한 문화 속에서 가능한 것인데도 이 같은 연구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LG전자는 아이디어가 구현될 지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프로젝트 초기부터 투자수익률을 계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나치게 보안을 강조하는 경직된 문화 또한 크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제품을 만들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그는 LG전자가 보안 때문에 이유 없이 막힌 인터넷 사이트가 의외로 많다며 아이디어 조사와 기술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접근조차 막히면 대부분 포기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홈엔터테인먼트(HE) 본부의 경우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보안상의 이유로 개인 컴퓨터가 아닌 중앙서버에 접속 후 작업을 하는데 이는 개발자들의 생산성을 엄청나게 갉아먹고 있다고 주장했다.

LG전자 내 의사결정 과정이 비합리적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자유로운 토론 문화가 없고 특히 최고 경영진이나 연구소장이 언급하면 진위 여부에 상관없이 그대로 의사 결정이 난다는 것이다. 또한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어떻게 한다고 하면 이 역시 비판적인 토론 없이 의사결정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 결정 시에 관련자들이 반드시 이유를 이해하고 필요하면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조직 문화가 돼야 진정으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말로는 '주인의식을 가져라'고 말하면서도 연구원들을 주인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철부지 중고생으로 대하듯 사소한 것까지 간섭하는 점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서초 R&D캠퍼스에서 본부와 연구소를 불문하고 지각을 체크해 각 조직별로 통계를 매일 보고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회사가 연구원들을 주인으로 대하지 않는데 주인의식이 생길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편지의 마무리에서 작성자는 "아쉽게도 CEO로부터 답장은 받지 못했다"면서 "CEO가 답장을 할 회사라면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결론을 내렸다.

현재 이 글은 누리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트위터와 커뮤니티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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