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IT혁명]<중>숨겨진 시장의 출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3일 03시 00분


100만개 틈새시장 속에 성공이 숨어있다

2008년 3월 말 회사를 세웠다. 그리고 3년을 열심히 일했다. 지난해 매출은 20억 원을 넘었고, 올해는 50억 원을 바라본다. 이 회사가 파는 건 전자책 하나다. 전자책을 파는 회사는 기존에도 많았지만 이 회사는 달랐다. 독자들이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모바일기기로 책을 볼 수 있게 하는 데만 집중했다. 리디북스라는 회사였다.

인터파크, 교보문고, 북토피아…. 이미 기존의 출판사와 서점, 전자책 전문 업체들도 비슷한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이들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용 전자책 시장을 그저 틈새시장으로 취급했다. 틈새시장에 큰 힘을 들일 이유가 없었다. 이들은 외주업체에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남의 손에 맡겨 놓은 사업이 잘될 리 없었다. 이런 가운데 리디북스는 국내 전자책 시장에서 1위가 됐다. 직원 24명, 단 8000만 원의 자본금으로 창업한 회사였다.

○ “히트상품에 대한 고민 잊어라”

미국 정보기술 전문지 와이어드의 편집장이던 크리스 앤더슨은 “100만 개의 상품 가운데 히트상품을 끌어내기 위해 골치를 썩고 있다면 이제 그런 고민은 잊으라”며 “미래는 100만 개의 틈새시장 속에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웹2.0’이란 말이 유행하기 시작하던 2004년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 틈새시장에서 성공한 기업은 거의 없었다. 앤더슨은 인터넷이 보급되고 영화와 음악, 책 등 문화 콘텐츠 상품이 디지털화되면 상품의 보관 및 유통 비용이 ‘제로(0)’에 가까워진다고 말했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매달 수천만 원의 서버 임대비용과 통신비를 내야 했다. 서비스 규모가 커지면 이 비용은 순식간에 수억 원 규모로 올라갔다.

7년이 지나고서야 새로운 일이 벌어졌다. ‘클라우드 컴퓨팅’이란 기술 덕분에 비용이 큰 폭으로 줄었다. 월 수천만 원에 이르던 서버와 통신 임대료는 100분의 1인 월 수십만 원 수준으로 줄었다. 창업비용이 극적으로 줄어들면서 ‘100만 개의 틈새시장’을 노리는 작은 기업들의 창업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물건을 만들어도 팔 곳이 없었지만 최근 불어온 스마트폰 열풍은 작은 기업들에 거대한 시장도 제공했다.

애플은 ‘앱스토어’라는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 장터를 만들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개인과 기업이 30%의 수수료만 내면 얼마든지 자신이 만든 물건을 팔 수 있게 했다. 이 모델은 전자책과 PC용 소프트웨어, 음악과 영화, 심지어 라디오방송까지 확대됐다. 구글도 안드로이드마켓, 구글뮤직, 구글북스 등 다양한 시장을 만들어내며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 작은기업 인수도 방법 될 수 있어

‘앵그리 버드’라는 스마트폰용 게임 하나로 지난해에만 1억 달러(약 1080억 원) 이상을 번 핀란드 게임회사 로비오(직원 약 50명)는 여러 게임을 만들지 않았다. 애플 앱스토어에서 앵그리버드가 성공하자 이 게임을 구글의 안드로이드폰과 노키아의 스마트폰,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폰 등에서도 할 수 있도록 변환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았다. 그러자 온 세계가 시장이 됐다. 게임 하나만으로 성공한 것이다.

작은 기업이 아주 작은 틈새에 집중하면서 세계를 상대하는 동안 큰 기업은 이런 작은 기업이 오고가는 관문 역할을 하게 됐다. 작은 기업이 열차라면 큰 기업은 기차역의 ‘플랫폼’인 셈이다. 이런 기업을 ‘플랫폼 기업’이라고 한다. 애플은 물론이고 아마존닷컴과 이베이, 유튜브 등이 플랫폼 모델을 통해 성장했다.

한국 기업의 선택도 결국 두 가지가 될 수밖에 없다. 플랫폼 기업이 돼 구글과 애플 못잖은 큰 기업이 되거나 아니면 리디북스나 로비오처럼 작고 가벼운 몸집으로 승부해야 한다. 최근 삼성전자가 베스트셀러 스마트폰인 ‘갤럭시S’ 등을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이용해 팔면서도 ‘바다’라는 독자적인 OS와 ‘삼성앱스’라는 앱스토어를 버리지 않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덩치를 줄일 수 없으니 플랫폼 기업이 되려는 것이다.

당장 플랫폼 기업이 될 수 없다면 작은 기업을 사들이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은 유튜브라는 동영상 업체를 인수한 다음 세계 최대의 동영상 서비스로 키워냈다. 최근 세계를 휩쓰는 안드로이드 OS도 외부 업체가 개발한 OS다. 애플도 음성인식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시리’라는 작은 업체를 인수했고, 구글처럼 모바일광고 시장에 진출하려고 ‘쿼트로’라는 광고업체를 샀다. 국내 기업 가운데에도 구글과 사업모델이 비슷한 NHN은 뒤처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해외 경쟁사를 따라잡기 위해 ‘미투데이’라는 작은 서비스를 22억 원에 인수하는 등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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