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스포츠 마케팅 열풍이 뜨겁다. 은행들은 프로팀 창단, 각종 스포츠 행사와 특정 선수 후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스포츠 관련 상품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국민 하나 신한 등 일반 시중은행보다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이 더 적극적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은행들이 스포츠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들인 돈에 비해 얻을 수 있는 마케팅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갈수록 고객 유치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잠재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스포츠라는 점도 이런 움직임을 부추긴다.》 ○ 스포츠팀 신설 및 관련 상품 시판 ‘봇물’
기업은행은 4일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여자배구 제6구단인 알토스(ALTOS) 여자배구팀을 창단했다. 외환위기 여파로 1997년 소속 농구부, 1998년 소속 축구부를 없앤 이후 13년 만의 스포츠팀 창단이다.
산은금융지주도 2일 스포츠 마케팅단 신설을 발표했다. 스포츠 마케팅단에서는 각종 스포츠 관련 금융상품을 개발하고, 프로골퍼 박세리 선수와 세계 주니어 테니스대회에서 우승한 이덕희 선수를 후원한다.
산은 관계자는 “한국 경제발전의 개척자 역할을 한 산은의 이미지와 두 선수의 이미지가 맞아떨어져 후원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은행들은 스포츠 관련 상품을 내놓는데도 열심이다. KB국민은행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는 공동구매 정기예금을 네 차례 판매했다. 겨울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다음에도 비슷한 상품을 두 차례 더 내놨다.
산업은행도 ‘KDB2018 평창 정기예금’을 판매했고, 농협도 유치를 기념해 고객들에게 여행상품권 등을 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27일 개막하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관련한 상품도 많다. 최근 ‘외화 공동구매 정기예금’을 선보인 외환은행은 대구육상선수권대회 남자 육상 100m 종목에서 세계신기록이 나오면 0.1%포인트의 우대금리를 주기로 했다.
올해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공식 후원사인 하나은행은 대표팀의 국가 대항전(A매치)이 열릴 때마다 입장권의 10%를 할인해 주는 ‘오 필승코리아 적금’을 판매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예금 가입자가 마라톤 코스를 완주하거나 스크린골프 성적이 좋을 때 우대 금리를 주는 ‘원더풀 마라톤 통장’과 ‘원더풀 골프 통장’을 내놨다.
KB국민은행 역시 예금 가입자가 응원하는 프로야구단의 성적에 따라 금리를 다르게 주는 ‘프로야구 예금’을 내놓은 바 있다.
○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스포츠 마케팅에 나서는 이유는 광고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연예계 톱스타를 기용해 6개월 단발 광고를 제작하려면 최소 10억 원에 이르는 돈이 든다. 소위 황금시간(프라임타임)대에 15초 광고를 내보내는 데도 수천만 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해당 은행 대신 광고에 나온 톱스타만 부각될 때도 많아 광고 효과는 미지수라는 평이 많다.
하지만 소속 프로팀이나 후원 선수의 경기는 사정이 다르다. 15초 광고와 달리 운동경기는 끝날 때까지 최소 두 세 시간이 걸린다. 특히 우승을 하거나 좋은 성적을 거두면 며칠이고 각종 언론 매체에 노출될 수 있다. 상업광고와는 비교할 수 없는 효과다.
야구와 축구 정도를 제외하면 스포츠단 운영에 생각만큼 큰돈이 들지도 않는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1년 운영비가 250억 원이 넘는 프로야구단과 달리 배구단 운영은 40억 원 정도면 가능하다”며 “비인기 종목을 후원한다는 명분과 평판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고 전했다. 1년에 최소 1조 원이 넘는 수익을 거두는 주요 은행들의 관점에서 보면 부담스러울 정도의 비용은 아니다.
잘하면 ‘대박’이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김연아의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우승으로 엄청난 광고효과를 누린 KB금융지주가 대표적이다.
KB금융은 김연아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후원했다. 지난해부터는 리듬체조 유망주인 손연재, 피겨 유망주인 곽민정 김해진도 후원하고 있다. 몸값이 쌀 때 후원 계약을 맺은 선수가 성공을 거두면 그동안의 비용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다.
스포츠가 특히 젊은층에게 어필하는 요소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어차피 국내 금융시장은 포화 상태여서 다른 은행의 고객을 뺏어오거나 잠재고객을 육성하는 길밖에 없다”며 “몇 년 후 직장인이 될 20대에게 스포츠보다 인기가 높은 항목이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물론 위험도 있다. 소속 팀이나 후원 선수의 성적이 부진하면 기업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쟁회사와 맞붙은 경기에서 패하면 대외이미지는 물론이고 조직구성원들의 사기도 떨어질 수 있다. 한때 잘나가는 프로골프 선수와 후원 계약을 맺었던 모 시중은행이 이 선수가 슬럼프에 빠지자 슬그머니 후원을 끝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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