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으면서 ‘한 돈(3.75g) 30만 원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오자 일상생활에서 금 소비가 많은 편인 한국인의 생활상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최근 금값 시세가 한 돈에 26만 원을 넘으면서 금이 들어간 술, 화장품, 치약 등이 자취를 감췄고, 명예퇴직자나 장기근속자에게 주던 금반지나 금배지도 점점 얇아지고 있다. 금니 대신 도자기로 된 이를 찾는 고객이 급증하는 가운데 돌 축하선물로 주던 돌반지는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얼마 전 금융회사에서 임원으로 퇴직한 박모 씨(52)는 회사로부터 20여 년 근속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순금메달을 받았다. 퇴직금과 별개로 받는 것이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금메달의 두께를 보고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 회사는 4, 5년 전만 해도 임원급이 퇴직할 경우 근속 연차에 따라 최대 금 37.5g(한 냥·10돈)을 줬다. 당시 시세로는 100만 원 정도였지만 최근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비용 부담이 커지자 회사는 현금 100만 원 한도 내에서 금메달을 제작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박 씨는 “금메달을 받은 이후에도 금값이 더 올라 기분이 좋다”면서도 “금메달의 두께가 얇아진 것을 보고 퇴직 시기도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치과에서도 금니 대신 도자기 이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금니 하나에 3∼5g 정도의 금이 들어가는데, 금값이 최근 4년 새 2배로 치솟으면서 원가 부담이 커지자 다양한 종류의 도자기 이가 개발됐기 때문이다. 이정욱 종로지앤미치과 원장은 “도자기 이는 원가가 금니의 절반 정도여서 세공비를 합해도 금니보다 훨씬 싸다”며 “과거에는 금니가 ‘부의 상징’이었지만 최근에는 미용상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금값 상승 추세로 의사도 환자도 도자기 이를 선호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금니를 빼서 재활용하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금니는 수명이 다하면 새로 갈아야 하는데 과거엔 치과에 버려두고 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이를 달라는 요청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 실제로 인터넷에서는 금니 매입전문 사이트가 수십 곳이나 운영되고 있다.
금이 들어간 상품의 구매패턴도 바뀌었다. 김은철 롯데백화점 상품본부 과장은 “예전에는 결혼예물로 반지 귀고리 목걸이 금세트가 잘 나갔지만 지금은 커플링만 하거나 순금 대신 18K 또는 14K로 단가를 낮춰 사는 고객이 늘었다”고 전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주부 이모 씨(38)는 “친구의 둘째 아기 돌잔치에 초대를 받고 금반지 선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잔치에 가지 않기로 했다”고 귀띔했다. 이 씨 친구는 이 돌잔치에 80여 명을 초대했지만 금반지는 2개를 받았다.
금값이 수직 상승하면서 금 투자도 계속되고 있다. 2일부터 주가가 급락하면서 한국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금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거래량은 급증하고 있다. 코덱스골드선물 ETF는 1일 3만5705주에 불과했으나 9일에는 49만4975주로 1286% 뛰었다. 수요가 몰리자 ETF의 가격은 1일 대비 23일 현재 18%가량 뛰었다. 시중은행의 골드뱅킹도 판매량이 늘었다.
국제 금값은 이날 처음으로 온스당 1900달러를 돌파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23일 금선물 12월물은 한때 온스당 1917.90달러까지 치솟았다. 스탠더드차터드(SC)는 얼마 전 보고서에서 금값이 공급 부족 때문에 온스당 500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금값 상승세는 실질 수요라기보다 기대 수요에서 나왔기 때문에 가격이 급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지난해 말 세계 금 수요량은 3970t으로 이 중 50.8%는 장신구용 수요, 37.5%는 투자용 수요, 11.7%는 산업용 수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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