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의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회사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MRO 계열사를 둔 포스코가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어 주목된다.
삼성이 MRO 분야에서 철수하고 SK가 MRO 자회사를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반면 포스코는 MRO 계열사인 ‘엔투비(eNtoB)’를 통해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의 모범 모델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 “기존 MRO와는 다르다”
2000년 포스코, KT, 한진, 현대, KCC 등 5개 그룹이 합작해 설립한 엔투비는 이후 KT와 현대가 철수하면서 포스코가 최대 주주로 떠올랐다. 현재 엔투비를 통해 구매대행을 하는 업체가 120여 곳이고 엔투비에 물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은 3200여 곳에 달한다.
포스코가 MRO 분야에서 손을 떼지 않겠다고 밝힌 가장 큰 이유는 엔투비의 철수가 오히려 중소기업들에 더 큰 어려움을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장 엔투비가 사업을 접으면 3200여 개 중소기업이 졸지에 거래처를 잃게 된다는 것. 포스코는 “엔투비는 오프라인 매장이나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업무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있다”며 “중소기업들은 엔투비를 통해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가장 차별화된 특징은 엔투비가 다른 MRO 회사와 달리 중소기업들의 납품 단가를 깎는 대신 엔투비를 통해 물품을 구매하는 기업들로부터 2.0∼3.5%의 구매대행 수수료를 받아 이를 중소기업을 돕는 데 쓰고 있다는 점이다. 포스코는 “구매가를 깎아 원가를 절감하는 여타 MRO의 방식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라며 “영업이익은 자체 물류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위한 물류창고 구축 등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엔투비에 납품하는 신흥폴리테크 지승하 사장은 “엔투비와 거래하면서 포스코, KCC 등 대기업의 안정된 물량 확보로 매출이 50% 이상 늘어났다”며 “원가 절감 성과를 엔투비와 납품기업이 공유하고, 엔투비의 물류망을 사용할 수 있어 다른 대기업의 MRO 업체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그동안 엔투비를 통해 물품을 구매하는 자체 계열사에만 구매대행 수수료를 부과했으나 앞으로는 모든 거래사로 확대하기로 했다.
○ 새로운 성공 모델 구축
포스코는 또 엔투비의 영업이익을 최소화해 ‘대기업의 배만 불린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0.43%였던 엔투비의 영업이익률은 올해 상반기(1∼6월)에는 0.1∼0.2% 수준으로 낮아졌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역삼동 엔투비 본사를 방문한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낮은 영업이익도 중소 공급사나 구매사의 편의 향상을 위한 시스템 개선 등에 우선 사용할 것”이라며 “사실상 0%의 영업이익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엔투비를 통해 수익을 남기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포스코는 엔투비의 성공적인 운영을 통해 ‘성과공유제’를 잇는 또 하나의 동반성장 모범사례를 만들 계획이다.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을 통해 원가 절감 혜택을 봤을 경우 절감된 원가를 포스코와 해당 중소기업이 나눠 갖는 성과공유제는 국내 대기업이 실시하고 있는 다양한 동반성장 대책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포스코 관계자는 “엔투비는 수익을 염두에 두지 않고 철저히 중소기업 편에서 운영해 동반성장의 또 다른 모범 모델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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