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정통부’를 구글이 되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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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일 03시 00분


지난달 26일 국회본관에서 열린 ‘민주당 정보기술(IT)정책 수립을 위한 10대 이슈 토론회’.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이날 축사에서 “이명박 정부의 IT홀대 정책으로 한국의 IT산업 경쟁력은 2007년 세계 3위에서 2009년 16위로 추락했다”며 ‘IT산업의 잃어버린 4년’이란 화두를 꺼냈다. 민주당은 이날 행사를 계기로 현 정부의 IT산업을 실패로 규정했다. 과거 정보통신부 격인 가칭 ‘정보미디어부’ 신설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구글의 모토로라모빌리티 인수로 촉발된 ‘한국 IT산업 위기론’이 ‘정통부 부활론’으로 옮겨가고 있다. 과거 IT정책의 컨트롤타워 격인 정통부의 업무가 현재의 지식경제부(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와 방송통신위원회(네트워크 서비스, 통신사업) 문화체육관광부(콘텐츠 진흥) 등으로 뿔뿔이 흩어진 게 위기의 핵심 원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IT업계 전문가들은 위기의 본질은 컨트롤타워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고 본다. IT업계의 관계자들은 “소프트웨어(SW)산업을 이해하지 못한 정부가 산업을 이끌겠다는 발상이 오히려 위기의 본질”이라며 “정부 주도로 나서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되살아나는 ‘정통부 부활론’

2008년 해체된 정통부의 부활론이 불거진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4월에도 민주당이 “정통부 폐지로 해당 분야의 연구자들이 소외됐다”며 지방선거용 공약의 일환으로 이를 거론했다. 하지만 최경환 전 지경부 장관과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정통부 부활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불씨는 일단 사그라졌다. 하지만 최근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 국내 IT산업에서 위기감이 고조되자 정통부 부활론이 다시 힘을 얻은 것이다.

소프트웨어(SW) 진흥부서인 지경부 측은 최근 몇 년간 IT산업이 후퇴했다는 정치권의 주장을 근거 없다며 반박했다. 민주당이 “디지털경제지수(EIU지수)가 2010년 16위로 추락했다”고 했지만 지경부는 “EIU지수는 2010년에 13위로 2007년보다 오히려 3단계 올랐다”고 지적했다. 또 2009년 4.2%에 불과했던 한국 기업의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이 올 2분기(4∼6월)에는 23.1%로 세계 1위를 차지하면서 승승장구한다는 것이다.

○ SW산업 본질 이해 못하는 정부

IT업계 종사자들은 정치권과 정부의 공방에 냉소적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업계 종사자들이 정부 정책에 불만을 느끼는 것은 과거 정통부 같은 기관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부 정책을 신뢰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질오염 조사용으로 추진한 ‘로봇물고기’ 프로젝트나, 최근 정부가 삼성, LG와 함께 국가 차원의 모바일 운영체제(OS)를 만들겠다는 정책 등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최근 지경부와의 조찬미팅에 참석한 관계자는 “정부가 2018년까지 SW산업의 진흥책을 내놓겠다며 조언을 구했지만, 사실상 1년 앞도 내다보기 힘든 게 이 분야”라며 “정부가 급변하는 SW산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너무 큰 그림을 직접 그리려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정보미디어부를 신설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IT업계의 불만을 이용해 표를 얻어 보자는 심사가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IT칼럼니스트인 정지훈 관동대 의대 교수는 “10여 년 전 미국에서 뇌의 기억을 추출했다가 재삽입하는 다소 황당한 연구를 국방부 자금으로 진행하는 것을 보았는데, 최근에 이 기술이 동물 실험에서 성공했다”며 “정부는 일반 기업들이 투자회수 가능성이 낮아 도전하기 힘든 분야에 장기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일부 조정은 가능할 듯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IT산업이 자동차, 조선 등과 결합되는 최근 융합 트렌드에서 과거처럼 IT산업만을 전담하는 부처를 만드는 것에는 반대한다. 다만 일부 조정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장석권 한양대 교수(산업공학)는 “방통위의 역할 중 심의와 규제기능은 별도의 위원회로 분리시키고, 네트워크와 IT산업 인프라 등의 진흥 업무를 맡는 부처를 만드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현재 IT산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청와대 IT특별보좌관이나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지훈 교수는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개발자들의 열정, 프로그래머에 대한 사회적인 존경심과 신뢰 등이 결합돼야 미국과 같은 SW 강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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