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와 같은 TV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펀드 랩(Fund Wrap)’에서도 ‘약자 탈락 방식’의 상품이 운용돼 눈길을 끌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의 펀드 랩 ‘아임유 서바이벌’은 편입한 펀드 5개 중 1, 2개를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투자하는 ‘나는 펀드다’ 상품이다. 순자산 규모 100억 원 이상 펀드 중 업계의 실력파 펀드를 모아 실적을 3개월 단위로 평가해 하위권을 제외시킨 뒤 새 펀드를 추가한다.
일반적인 펀드 랩은 ‘성과가 나빠지면 펀드를 바꿀 수 있다’ 정도로 느슨하게 운용되지만 ‘아임유 서바이벌’은 3개월 중 3분의 2 기간에 상위 30%를 유지한 펀드만 남긴다. 좋은 성과를 기대한 덕분인지 1호에 404억 원, 2호에 844억 원이 몰렸다. 1호에 참가한 교보악사 동부 산은 삼성 JP모건자산운용의 펀드매니저들은 “탈락할 때 자존심이 상할 것 같고 펀드 자금도 빠져나가 평소보다 훨씬 스트레스를 받는다”라면서도 “펀드시장 부흥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입을 모았다.
○ 꼼꼼한 질문, 살 떨리는 긴장감
매니저들은 최초 심사장에서 한국투자증권 펀드랩 운용팀 앞에 나와 자기 펀드의 장점과 운용 철학을 최대한 매력적으로 소개했다. 한 매니저의 설명이 끝나면 이미 순서가 지나간 매니저라도 손을 들고 “할 말이 더 있다”고 나서는 등 분위기가 치열했다.
이혜진 교보악사자산운용 매니저는 ‘코어펀드’에 대해 “다른 펀드들이 시가총액 비중대로 종목을 편입하는 반면 우리 펀드는 종목이 크든 작든 같은 비중으로 투자해 초과 수익을 노린다”고 설명했다. 8월처럼 주가가 폭락할 때조차 매니저가 판단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매매했다고 이 매니저는 말했다. 그의 발언이 끝나자 “시기에 따라 주도주가 있기 마련인데 종목을 같은 비율로 투자하면 주도주를 놓칠 가능성은 없나” “인수합병(M&A)처럼 갑자기 불거진 문제는 정량평가로는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보완하나”와 같은 심사위원단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 매니저가 “계량화된 투자지표에 종목이 많이 포함되는 업종이 주도주이므로 문제없다” “운용팀이 회의를 해서 만장일치로 종목을 넣거나 빼기도 한다”라고 대답하자 심사위원단의 표정이 부드럽게 바뀌었다.
5개 운용사의 펀드매니저들(오른쪽)이 심사위원단 앞에서 펀드운용 철학을 소개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이준혁 동부자산운용 팀장은 ‘파워초이스펀드’를 “15개 종목만 집중 투자하는 압축펀드지만 시황을 따라 움직이진 않는다. 지금껏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은 거의 투자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그 대신 주당순이익(EPS)이 오르고 하락폭이 지나치게 크며,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낮은 종목 중에서 골라 투자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점검한다는 것. 이 팀장은 우연하게도 주로 내수, 전기전자, 통신이 많았다고 소개했다. 심사위원단은 “요즘처럼 차·화·정이 폭락하면 낙폭 과대 조건에 차·화·정이 집중적으로 걸릴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하자 이 팀장은 “선정된 종목을 다 편입하지 않고 탐방해본 뒤 투자할 곳을 고른다”고 해명했다.
전정우 삼성자산운용 상무는 ‘마이베스트펀드’를 두고 “최근 시장 참여자의 공포심과 탐욕이 빠르게 주가에 반영되면서 주가 변동성이 커졌다. 시장을 따라가지 않는 ‘청개구리’ 전략으로 추가 성과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심사위원단이 “최근 하락장에서 대응을 잘했나”라고 묻자 전 상무는 “썩 잘하지 못했다”며 목소리를 낮췄다. 전 상무는 “시장을 좋게 봤는데 틀린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대세가 완전히 꺾이진 않은 것으로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 탈락이 눈앞에 보이기도
‘아임유 서바이벌 1호’의 첫 평가시한인 10월 중순에 첫 탈락자가 나온다. 2일 현재 중간 수익률 최하위권에 있는 산은, 삼성, JP모건자산운용이 ‘탈락 유력’으로 거론된다. 산은과 JP모건은 지난달 9일부터 운용이 시작된 ‘아임유 서바이벌 2호’에서는 이미 제외됐다. 곧 운용을 시작할 3호에는 삼성자산운용이 포함되지 못할 수 있다.
JP모건자산운용의 ‘코리아트러스트펀드’는 올해 내내 최상위권 성과를 보이다 8월 폭락장을 거치면서 하위권으로 밀려났다. 이승엽 JP모건자산운용 이사는 “우리 펀드가 2007년 선보인 뒤 리먼 사태 등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원칙을 지켜 결국은 수익률이 회복됐다”며 “투자자들이 다시 기업 본질 가치에 초점을 맞추면 우리가 선택한 기업들의 주가가 상대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세계최강국내기업주식펀드’를 운용하는 김경윤 산은자산운용 팀장은 “세계적 경쟁력을 인정받은 한국 굴지의 수출기업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세계 경기침체에 직격탄을 맞아 투자자들에게 죄송하고 심리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라면서도 “한국 대표기업의 경쟁력을 믿고 장기 투자를 하려면 단기 수익률 부진은 감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탈락에 대한 부담감은 커 보였다. 김 팀장은 “서바이벌과 관련 없는 기존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잠재 투자자를 구해 두는 등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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