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트’ 마크가 붙어있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한 농가 대문. 뒤편으로 100년 가까이 된 고택과 초지가 보인다. 지트는 프랑스 농가들의 민박 네트워크로, 농가 소득 증대 및 도농 교류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노르망디=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2일(현지 시간)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차로 2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노르망디 지역. 끝없이 펼쳐진 들판과 맑은 공기, 쏟아지는 햇살이 인상적인 전형적인 유럽 농촌지역이다.
이런 시골길을 30분가량 더 달려 도착한 곳은 구엘로 에마뉘엘 씨(43)의 사과 농장이다. 그는 노르망디에서 총 150ha 규모로 농사짓고 있다. 사과 밭이 50ha, 초지가 65ha, 옥수수 밭이 35ha이다. 초지와 옥수수 밭은 그가 사과밭과 함께 키우고 있는 소 60마리, 송아지 40마리의 사료를 재배하기 위한 땅이다. 유럽연합(EU)에서는 축산농가들이 소 1마리당 의무적으로 초지 1ha를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의 농장은 말 그대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져 있었다. 한국 농가들의 평균 경지면적이 1.5ha인 것을 고려하면 100배나 넓은 땅이었다. 하지만 에마뉘엘 씨는 “프랑스에서 이 정도는 전혀 큰 농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까르푸 같은 유통업체들이 유럽 전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생각하면 이런 농장들이 수백 개씩 힘을 합쳐도 부족하지 않겠어요?”
에마뉘엘 씨는 자신 역시 노르망디 사과농협에 가입해 유통업계의 판로를 뚫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1997년부터 부모님 농장을 이어받아 농사를 짓고 있는데, 당시 사과조합과 18년 장기계약을 맺었다”며 “조합과 계약하면 원칙적으로 생산물량 전량을 조합에 출하해야 하고 가격은 농협이 정하는 가격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격에 불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농가들이 조합 가입 때 다들 최대 30년의 장기 계약을 맺기 때문에 결속력이 매우 강하다”며 “사과주스, 와인 등 가공식품 개발이나 영국, 미국 등 해외 수출을 할 때는 조합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농가들이 조합 측에 총 매출의 0.05%만 수수료로 내면 나머진 조합이 다 알아서 팔아준다는 설명이었다.
노르망디 사과조합은 농가들이 생산한 사과의 품질에 따라 다른 값을 쳐주고 있었다. 농가들이 더 나은 품질의 사과를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셈이다. 에마뉘엘 씨는 “사과 가격은 등급에 따라 t당 115유로(약 17만4800원), 135유로, 165유로로 나뉜다”며 “만약 저(低)농약 저비료를 써서 바이오(Bio) 인증을 받으면 사과의 품종과 관계없이 t당 200유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 역시 이 인증을 얻기 위해 3년째 제초제 등을 전혀 쓰지 않고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유럽 농가들이 EU의 농업보조금을 받기 위해 철저히 품질관리를 하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에마뉘엘 씨는 “EU로부터 1년에 4만5000유로(6800만 원)가량의 영농 지원금(축산 지원금 포함)을 받고 있는데 이를 받으려면 환경관리, 위생관리, 농약사용 등에 대한 일지를 꼼꼼히 기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프랑스 농촌에서는 ‘지트(G^ite) 드 프랑스’라는 마크를 문 앞에 붙인 농가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지트’는 호텔에 등급을 매기는 것처럼 시골에 있는 농가들 중 ‘머물기 좋은 집’에 주는 인증이다. 지트의 등급은 보리마크 1∼5개로 나뉘며 도시인들은 이를 통해 농가의 상태를 알고 여행을 계획할 수 있다.
지트 마크를 얻어 농가 민박 사업을 하고 있는 노르망디 지역의 한 주민은 “지트를 찾는 손님들은 최소 일주일 이상 머무는 경우가 많은데, 농장주 역시 단순히 방만 내주는 게 아니라 함께 저녁을 먹는 등 농촌 생활을 보여주기 때문에 도농 교류의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현재 프랑스 전역에 지트 농가는 5만6000여 개, 이들의 연 수익은 약 12억 유로(1조8000억 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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