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 가진 ‘대학생 주식투자대회’, “여의도行 티켓” 각광… “타짜들의 리그”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9일 03시 00분


“김 군, 마음만 먹는다고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세.” 8월 대학가에 빨간 바탕의 포스터가 나붙었다. 포스터 속 문구는 대학생들을 한눈에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몇 단계만 통과하면 총 100억 원의 투자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 통 큰 선물을 내건 주인공은 대신증권 크레온(온라인 주식거래 시스템)의 주식투자대회 ‘크리에이티브 트레이더’였다.

주식투자대회는 상위 입상자에게 취업 지원 시 가산점과 인턴 채용, 상금 등 각종 특전을 제공해 대학생들의 관심이 높다. 2000년대 중반부터 주가 상승 분위기를 타고 진화를 거듭해 ‘2일 연속 수익을 거둬라’와 같은 단계별 미션을 해결하는 ‘서바이벌 경쟁형’ 주식투자대회도 등장했다.

○ 주식투자대회를 향해 달려라


증권사들은 주식투자대회를 열면서 대학생 등 젊은층만의 별도 리그를 마련하거나 아예 대학생 대상 대회를 따로 개최한다. 증권사들이 대학생을 특별히 겨냥하는 이유는 신규 고객 확보라는 목적과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대회에 참가하면 해당 증권사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이용하고 해당 증권사에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 대회가 끝난 뒤에도 해당 증권사 고객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8월 시작한 대신증권 크레온 주식투자대회에도 대학생 그룹에서만 460여 명의 학생이 참가했다. 6월 27일부터 7월 29일까지 5주간 진행된 키움증권의 제9회 대학생 모의투자대회에는 대학생 7838명이 몰렸다.

금융권 취직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에게 주식투자대회 수상 경력은 ‘특급 스펙’이다. 서강대 주식투자동아리 SRS의 조정호 회장(24)은 “증권업이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분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식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자격증이 워낙 흔해져 이제는 주식투자를 직접 하거나 투자대회에 참가해 이력을 쌓으려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주식투자대회를 발판으로 여의도에 입성한 대학생이 많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1∼3회 모의투자대회 상위 입상자 30명 중 19명을 확인한 결과, 9명이 증권사 및 금융권에서 일하고 있었다. 2명은 전업투자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동양종금증권에서 근무하는 권모 주임(28)도 주식투자대회 수상경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취업을 목적으로 주식투자대회에 참가하진 않았지만 수상 경력이 취업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재테크에 관심이 많아 대학 시절부터 책을 읽어가며 투자를 시작했는데 운 좋게 대회에서 상까지 탔다”며 “면접에서 자격증은 적지만 남들보다 주식을 잘 알고, 실제로 잘한다고 큰소리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 루머 의존 테마주에 치우치기도


하지만 주식투자대회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물론 대부분 사이버머니를 이용하지만 수익률을 바탕으로 시상을 하고 상금을 주는 주식투자대회가 건전한 투자문화를 조성한다는 취지와는 맞지 않을뿐더러 도리어 ‘투기문화’를 조장한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투자대회의 투자종목이 소형주, 루머에 의존하는 테마주에 치우치는 등 사행성 게임으로 변질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7월 말 끝난 키움증권의 9회 대학생 모의투자대회만 살펴봐도 거래량이 가장 많았던 10개 종목 중 9개는 시가총액이 8월 말 기준 3000억 원도 안 되는 소형주들이었다. 이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참가자의 수익률은 172.39%에 이르렀다. 현재 진행 중인 대신증권의 투자대회에서도 최근 ‘문재인 테마주’로 지목돼 가격 등락을 겪은 대현과 안철수연구소 등 정치인 테마주가 참가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수익률이 우선이다 보니 급상승하는 종목을 노려 위험한 투자에 마구 나서는 셈. 더 큰 문제는 상당수 투자대회가 실시간으로 매매종목을 생중계해 다른 투자자들까지도 ‘묻지 마 투자’ 바람에 휩싸이게 한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과거엔 주식에 관심이 없던 대학생들에게 주식투자를 알린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소수의 ‘타짜’가 지배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돼 버린 것 같다”고 꼬집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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