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계적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친 지 3년이나 흘렀지만 금융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공포의 진원지가 유럽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14일 그리스의 국채 금리 급등으로 국가부도 가능성이 커지면서 투자심리가 또다시 얼어붙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프랑스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는 소식까지 날아들면서 코스피 하락에 가속도가 붙었다.
○ 그리스 디폴트 공포에 금융시장 출렁
추석 연휴 기간 내내 세계 금융시장을 달궜던 그리스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에 코스피는 시작부터 출렁였다. 8.84포인트 내린 1,804.09로 개장했으나 곧바로 1,800 선이 무너졌다. 특히 외국인투자가들의 매도 공세가 주가를 내리막길로 이끌었다. 오후 들어 무디스가 프랑스계 은행인 소시에테제네랄과 크레디아그리콜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낙폭은 더 커졌다.
이날 외국인은 7000억 원 가까이 팔며 7거래일째 매도세를 이어갔다. 개인투자자들이 4500여억 원, 기관투자가들이 700억 원가량 순매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코스피는 63.77포인트(3.52%) 하락한 1,749.16으로 장을 마감했다.
전 업종이 하락했지만 유럽의 신용위기가 국내 금융권에도 영향을 미치리란 불안이 커지면서 은행과 증권업종이 4% 이상 떨어지며 직격탄을 맞았다. 또 대장주 삼성전자가 3% 넘게 하락했고 현대차, 포스코, 현대중공업, LG화학, 신한지주 등 업종 대표주를 포함해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이 모두 내림세를 보였다.
외국인이 주식을 판 돈으로 달러 매입에 나선 영향으로 환율은 급등세를 보였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직전 거래일보다 20.70원 오른 1098.00원에 거래를 시작해 결국 30.50원이나 오른 1107.80원으로 마감했다.
○ “예고된 위험” vs “유럽 전이되면 심각”
이제 그리스의 디폴트는 시간문제 아니냐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끝내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하고 유럽 금융시스템이 충격을 받으면 국내 주식, 채권시장도 약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높다. 유럽계 자금이 주식시장은 물론이고 국채 채권시장에서도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리스 사태가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 등 재정위기를 겪는 남유럽 국가들로 번진다면 파급력은 리먼 사태에 버금갈 수 있다. 김형렬 교보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문제는 위기가 그리스에서 그치는 게 아닐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공포”라며 “전반적인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면 상황이 심각하며 금융기관들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물론 금융위기를 거치며 각국 금융기관에 대한 긴급자금 지원정책 등 신용경색 확산을 막을 장치들이 마련돼 있어 그리스 디폴트 충격이 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고유선 대우증권 연구원은 “국내 은행들의 위험노출 정도가 2008년과는 확연히 다르다”라며 “그리스 디폴트로 유럽 은행들의 위험이 커지더라도 국내 은행들은 건전성 문제나 자금 이탈, 원화 가치 급락의 악순환을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전문가들 모두 단기간 내 악재들이 해결되기 어렵다는 데는 고개를 끄덕인다. 안남기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리먼 사태가 난 지 3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는 절반의 회복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라며 “유럽 재정위기, 세계경기 둔화세가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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