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르 다일라미 세계은행 이머징마켓팀장은 “세계 경제가 다극화 체제로 접어들면서 신흥국들 간 기업 인수합병(M&A)과 투자 등이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세계는 완전히 새로운 단계(New Stage)에 들어섰습니다. 선진국과 달러 권력이 신흥국 및 다중 기축통화 체제로 이미 재편되고 있습니다.”
만수르 다일라미 세계은행 이머징마켓팀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후 경기침체를 세계 경제 지각판의 변동 과정으로 설명했다. 글로벌 경제가 재편되면서 기존 달러 중심 체제가 2025년에 유로, 위안, 달러의 다중 기축통화 시대로 정착될 것이라는 얘기다.
서울컨센서스 국제 심포지엄(19, 20일) 참석차 방한한 만수르 팀장은 올해 5월 세계은행이 발간한 ‘다극화-새로운 글로벌 경제’의 저자로 주목받았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원, 뉴욕대 교수 등을 지냈다. 그는 이 책에서 다극화를 전제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 상실과 새로운 신흥국 그룹을 강조하며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4대 신흥국을 뜻하는 브릭스(BRICs)에 한국 인도네시아를 더한 브리식스(BRICIKs) 6개국이 2025년까지 세계 경제성장의 절반을 차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을 6개 성장축 그룹에 포함할지를 놓고 당시 세계은행 내부에서 논쟁이 적지 않았다”며 “기술, 인력, 교육수준, 자본 등 여러 분야를 종합했을 때 한국을 빼놓고는 새로운 글로벌 성장동력을 얘기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만수르 팀장은 20여 년 동안 한국 정부 및 기관들과 여러 차례 공동 연구를 진행하며 한국 경제의 성장과정을 지켜봤다. 그는 “많은 나라가 없어도 있는 척하는데, 한국인들은 위대한 성장의 역사를 갖고도 스스로를 낮춰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유럽 재정위기에 대해 “유럽 스스로 공동 대응에 나선 만큼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면서도 “유럽인들이 사고의 전환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자존심을 꺾고 중국 등 신흥국에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 그는 ‘글로벌 경제의 흐름이 신흥국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데도 유럽이 옛 영광에 젖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해서는 “시장의 우려가 과민하다”고 평가했다. 성장의 둔화(Slow Down)일 뿐 경기침체(Recession)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선진국의 둔화를 신흥국이 만회할 수 있다”며 중국 역할론에 주목했다.
2025년경 다중 기축통화 시대가 정착되면 경제 분야의 권력이동이 정치와 맞물려 강대국 간 갈등으로 세계적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만수르 팀장은 우려할 일이 아니라고 낙관했다. 그는 “17세기 이후 기축통화는 100년 단위로 굴덴→스페인 달러→파운드→미국 달러 등으로 바뀌었다”며 “기축통화가 바뀌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밝혔다. 또 “20∼30년 후를 내다보면 스위스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등의 화폐와 함께 한국 원화도 ‘세이프 헤이븐’(안전한 투자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증시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 경제에 해외 변수가 많고 한국 증시가 자금을 빼내가기 쉬운 곳이라는 것은 약점이 아니다”라며 “한 번씩 나타나는 외국인 자금 이탈을 자연스러운 단기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만수르 팀장은 한국의 과제로 선진국으로 올라서지 못하는 ‘중진국의 덫’ 해결과 에너지의 높은 해외 의존도를 꼽았다. 그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분출되는 많은 욕구와 요구들을 원만하게 풀지 못하면 중진국의 덫에 빠질 수 있다”며 “연금 교육 고용 사회네트워크 등을 계속 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신흥국 성장으로 에너지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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