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사는 박모 씨(53)는 대기업 간부로 두 자녀와 아내를 두고 있다. 박 씨는 2년 넘게 투자해 온 국내 주식형 펀드를 최근 환매했다. 대형주에만 집중 투자하는 펀드여서 8월 코스피 폭락으로 수익률이 크게 떨어진 데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나빠질지 알 수 없어 서둘러 주식형 펀드를 깼다. 그는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더블딥(경기회복 후 재침체) 우려로 증시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펀드를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며 “앞으로도 주식형 펀드는 접을 생각”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펀드를 다시 하게 되더라도 주식형이 아닌 혼합형 펀드를 고려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증시가 계속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자 ‘펀드 투자’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 등 글로벌 악재로 주가 폭락이 되풀이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채권 비중이 높은 혼합형 펀드나 채권형 펀드로 옮아가고 있다. 주가가 쌀 때 펀드에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을 얻는다고 확신하던 ‘스마트 투자자’들마저 발길을 돌리고 있다.
28일 금융투자협회의 유형별 펀드 판매규모에 따르면 주식형 펀드는 뒷걸음질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주식형 펀드는 2007년 7월 코스피가 1,900 선을 돌파하는 상승세를 타면서 1000만 계좌를 넘어섰다. 그 뒤 2008년 6월 1817만 계좌까지 늘었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2008년 말 1654만1000계좌에서 2009년 말 1382만6000계좌로 줄었고, 지난해 말에는 1082만1000계좌로 3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3월 말 1068만2000계좌에서 5월 말 1040만3000계좌, 6월 말 1038만7000계좌, 7월 말 1007만8000계좌로 계속 줄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8월 증시가 급락한 이후 단기적으로 ‘저가 매수세’가 몰릴 수 있지만 큰 흐름으로 보면 1000만 계좌가 조만간 깨질 개연성이 높다”고 전했다.
반면 채권투자 비중이 50% 이상인 혼합채권형 펀드는 올 1월 말 79만4000계좌에서 7월 말 95만1000계좌로 증가하면서 100만 계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채권형 펀드도 1월 말 63만7000계좌에서 7월 말 65만5000계좌로 늘었다.
주식형 펀드가 줄어든 데는 지난해 코스피가 2,000 선을 넘기면서 차익실현 고객이 급증한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많다. 이에 더해 큰 수익을 노리기보다 ‘은행 예금금리+α’ 수준으로, 작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투자 패턴이 변하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배성진 현대증권 연구원은 “개인투자자들이 큰 진폭의 증시 변동성을 감당하기 힘들다 보니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혼합형 펀드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혼합형 펀드는 최근 폭락장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였다. 27일 기준 국내주식형 펀드의 최근 3개월 수익률은 ―22.24%, 해외주식형은 ―21.27%이다. 반면 국내 및 해외혼합형은 각각 ―7.65%, ―8.98%로 상당히 선방하고 있다. 시장 자체도 커지고 있다. 펀드평가사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혼합형 공모펀드 수는 지난해 말 1060개에서 이달 27일 현재 1153개로, 해외혼합형 펀드는 같은 기간 240개에서 287개로 늘어났다.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은 “안정적이면서 꾸준한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 패턴이 자리 잡으면 혼합형과 채권형 펀드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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